바람직한 라이프 사이클을 위하여
‘비긴 어게인’이라는 이 책은 82년생 이다혜라는 여자 변호사와 81년생 임이삭이라는 남자 변호사가 그동안 보고 느낀 것을 쓴 이야기고 젤리판다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내용이 무겁지 않은 데다 어려운 법률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나는 법과 제도에 대한 책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많이 찾아 읽는 편이다.
예전에는 언제, 누가, 왜, 처음으로 이런 법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형벌에 관한 법률이든, 재산에 관한 법률이든.
지금은 법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호기심보다 인간관계 당사자끼리 해결 못한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법률이라는 최전선 지점으로 끌고 갔다는 데서, 그게 무슨 이유인지에 관심이 간다.
어떤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자고 했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안다.
정말 참다 참다 참을 수 없는 일이라서였다는 걸.
다들 웬만큼은 참는다.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해서 법에 맡겼다고 하루아침에 뚝딱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제삼자에게 조율을 받기 위해 법에 다가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과, 또 그 일을 맡게 된 법조인들이 그들의 재판과 소송을 치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저 책을 읽게 되었다.
그중에 “너희 중 죄 없는 자는 롱 패딩에 돌을 던져라"라는 챕터가 있다.
옮기자면 이런 사건이었고, 후일담이 나와있지는 않았다.
p.82
인터넷에 악성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조사받던 한 여자가 있었다.
나는 놀랐다. 여자는 경찰이 제시한 댓글의 목록 중 자신이 작성한 것이 어느 것인지 제대로 골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지목한 모든 댓글에는 그 여자가 사용하는 인터넷 아이디가 달려 있었지만, 여자는 그 댓글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여자는 그만큼 다양한 기사에 많은 댓글을 달았고, 심지어 댓글 중 상당 부분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작성한 댓글을 이리저리 옮겨 달아 놓은 것이었다. 주제도 정말 다양했다. 유명인의 스캔들, 어느 시험 합격자의 후기, 영화 평론가의 칼럼, 연예인의 일상을 다룬 기사까지. 그녀의 원인 모를 분노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향해 있었다.
그렇게 많은 댓글을 쓰다 보니 올 것이 왔다. 피해자는 여자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 여자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여자는 자신에게 피해자를 평가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피해자가 용서를 구하거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쓴 댓글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
여러 명이 모이거나 익명성 속에 숨을 때 그런 착각은 더 힘을 발휘한다.
나는 진짜 잘 몰랐었다. 어떤 사람들이 왜 이런 댓글을 다는지.
그리고 아직도 모르겠는 건, 이런 사람들이 기소가 되었을 때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용서해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들은 기억도 못 하고 잘못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냥 그때 그러고 싶었던 거다.
악성 댓글을 받은 사람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그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TV도 없는 내가 TV 뉴스로도 여러 번 봤고, 인터넷 신문으로도 읽은 적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미디어에서도 악플은 문제가 있다고, 얼마나 많이 이 문제를 노출시키고, 여러 번 목소리를 높였었는지 모른다.
슬프게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적 이유로든, 사회적 이유로든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할 생각이 없다. 자기 불행이 자기 관심분야 1순위라서.
불행한 사람들 모두가 악플을 달지는 않지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결코 악플을 달지 않는다.
불행한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질 리는 없을 테니까 악플을 다는 사람들 자체가 없어지는 그런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다고 해서 날이 선 언어라는 흉기를 인터넷 공간에서 휘둘러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불행하기도 하고 해서 자기만의 논리로 자기가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생각도 안 날 댓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어쨌든 그 비난으로 인해 당사자가 고통을 받은 만큼, 그리고 악플의 악영향이 과소평가되지도 않았지만 이젠 진짜 악성 댓글이 사회적으로 죄라고 사법체계에서 인정해준 만큼 처벌을 제공해드려야 한다. 그 죄의 대가를 치러보고, 그 대가를 치르더라도 계속해서 살면서 악플을 달 이유와 목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분의 삶의 신념 같은 거다. 당연히 우리 사회도 함께 그 댓글에 대한 죗값을 하나하나 각인시켜드리고 감당도 하게 해 드려야 그분 인생에 알맞을 라이프 사이클이 완성될 것 같다.
원인이 있으면 그 후에 그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왜 이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인과관계.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인간세상에 꼭 필요한 단어인가.
그리고 악플이 그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강력한 존재 방식이라면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 것보다 사회도 그에게 어울리는 강력한 피드백을 줘야 서로 합이 맞는 게 아닐까.
좋은 내용의 글이건 나쁜 내용의 글이건, 자기만 볼 수 있는 개인 연습장에 끄적거린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썼다는 건, 그냥 쓴 것이라기보다 누군가로부터 피드백을 바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도 무응답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강력하게 '응답'받고 싶어서 그렇게 강력하게 임팩트 있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폭발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법체계가 인과관계를 위해서 인과응보라는 응답을 해주면 좋겠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덧) 어디에 소개가 되었는지 조회가 많이 되었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라이킷도 많이 받고 싶고. 댓글 써주는 분 있으면 구독자가 많지 않아서 일일이 답글 달아드릴 수 있는데.
https://brunch.co.kr/@ddocbok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