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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06. 2019

내 편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내 편이 많다는 것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포기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이제 나도 수많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같은 편, 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너도 코딱지만 한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해서 생계를 유지하느라 급급한, 가진 거 없고 집도 없는 우리 편!’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꿈을 포기함으로써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조건, 같은 생활인, 같은 편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누가 물어본 적도 없지만 몰래 그 수많은 존재들이 아주 큰 내 편이라고, 우린 다 같은 한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주 큰 내 편이 있다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주 큰 내 편이 있다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주 큰 내 편이 있다    

이게 뭐라고, 이게 또 나에게 안도감을 줬다.




TV를 보면 작가가 되지 못한 작가 지망생들의 모습은, 생계와 정상적인 삶은 내팽개친 채, 잘 씻지도 않고 맨날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정확히는 자기가 만든 스토리에 빠져서) 글만 쓰고, 책만 들여다 보고, 또 연구하고 글 쓰고, 그렇게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느라 엄마가 잔소리를 하든 말든, 친구들이 나와서 술 먹자고, 놀자고 부르든 말든 자기 세계에 빠져 지내는 모습이었다.           



사실이 저렇다.



나도 저런 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작가 지망생, 혹은 음악이나 연기 등 예술 쪽으로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예술가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시기가 있다. 그래서 나도 그랬다. 간헐적으로 짧으면 몇 주, 길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저랬다가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 예술가병에 걸린 채로 꾀죄죄하게 살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내 후세에 내 작품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보다, 그냥 살아있는 내가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고, 내 생계는 내가 책임지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인 게 나한테는 더 중요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작가적 양심으로 세상의 어두운 진실을 밝히거나,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이 이야기는 나 아니면 완성 못 한다! 하는 이런 정의롭고 뚝심 있고 신념 있는 정신적이고 작가다운 이유보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가 대박 나서 내 인생에 악셀 한번 제대로 밟아보고 싶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물질적 이유로 글 쓰고 있었던 마음이 가장 컸거나 두 번째로 컸기 때문에 그걸 충족시켜 주지 않고, 해주는 것 없이 내가 버는 족족 등골만 쪽쪽 뽑아먹는 내 꿈이 그대로 있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버렸다.

         





뚜렷한 꿈과 목표가 있는 삶이라고 해도, 거기에 내 몇 푼 안 되는 돈을 다 쏟아부어야 겨우 책 보고 아카데미 다닐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예쁜 새 옷도 못 사 입고, 나가서 움직이면 다 돈이라 일주일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매일 아침 참치김밥 세 줄 사서 아침, 점심, 저녁에 하나씩 먹으며 글만 쓰는 삶이었다. 그거보다 못 먹을 때도 당연히 많았다. 비록 돈을 빌리더라도 굶지는 않았지만.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돈을 빌리는 건 또 그거대로 쪽팔리고 아주 잠시라고 해도 비참한 일이다. 큰돈이 아니기에 더욱.



그냥 글 쓰는 걸 포기하고 나가서 규칙적으로 일을 해서 월급도 받고 햇빛도 쬐고 어떤 날은 백반 정식, 어떤 날은 제육덮밥, 어떤 날은 짜장면을 골라 사 먹는 게 좋은 선택지 같았다.



해볼 만큼 해봐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도 꿈이 있는 삶 대신, 창작 같은 거 하는 대신, 저녁이 있는 소비하는 쪽에 섰다.          



남들 하는 것.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부담 없이 편하게 영화 보고 드라마 보는 삶.



시나리오 작가가 꿈일 때는 그냥 예능에 나오는 연기자인 연예인들을 볼 때에도, 드라마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저 사람이 내 작품에 나와주면 어울릴까, 나와줄까,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면서 볼 때가 많았는데, 이런저런 생각하며 보는 것보다 그냥 즐기기 위한 이유로만 보기 시작하니까 솔직히  편했다.



창작하거나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는 편한 삶. 어떤 게 더 보람과 행복지수가 높은 지는 모르지만 편한 건 소비하는 쪽에 있는 게 월등히 높고, 소비하는 쪽에 있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월등히 편하고 월등히 쪽수 많은 편. 그 편에 내가 서 있다. 그 많은 편이 다 내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니까 좋았다.



그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이 편한 것들을 하고 살았다니. 나도 이제 계속 이렇게 살아야지.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랑 한편이다. 다 내 편, 같은 편이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훨씬 편했다.



그리고 혼자 강렬한 목표를 가지고 살 때보다 행복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닐, 그저 마음일 뿐인데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줬다.



진리상점을 마무리하면서 설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를 아시는 사람들은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아시는데... 저한테만 유독 색안경을 끼시고 보는 분들이 좀 많아서 그런 것들이 속상하기는 하죠.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진리상점을 하면서 제 편도 많이 생긴 거 같고... 사람들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좀더 저를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하는 질문에 설리의 답변은 이랬다.


-제 편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가장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색안경을 통해 본 것으로 그녀를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고 공격해서 그녀는 더 큰 자기편으로 보호막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안도감을 느끼며 들어가 있는 그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 무리에 그녀의 편도, 색안경을 쓴 사람들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무얼 하든 남에게 피해 가지 않는다면 자신의 편과,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을 뚜렷이 인식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였어야 했는데.


사회가, 그리고 먼저 태어나 살고 있던 우리들이 준비해줬어야 했는데.



그냥, 좀 사회가, 분위기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면 최소한 우리 스스로라도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는 하는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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