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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05. 2019

우리 모두는 협동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연예인의 안티팬들이 얼마나 조직적인지 들은 적이 있다.


들은 얘기에 따르면 안티팬들은 인터넷 안티카페를 통해 해당 연예인을 싫어하는 공감대를 수시로 확인하며 형성한 후,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단톡방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해당 연예인의 기사가 아주 작은 거라도 나면, 그 단톡방을 통해, 그 기사 링크를 공유해서, 흔한 말로 ‘좌표를 찍고’, ‘달려가서’ 악플을 단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기사라도. 팬보다 빠르게. 더 많이.     


처음에 그 얘기를 들은 내 생각은 이거였다.     


‘싫어하는 거라고 하기엔 이것도 뭔가 정성인데?’     


살아있던 설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숨고 싶었고 두렵기도 했지만, 피해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실시간으로 공격하는 집단이 있는데, 숨지 않고, 피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무엇이 숨고 싶었지만, 숨지 않고, 두렵지만 결국 하게 하고, 피해버리고 싶었지만 피하지 않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부끄러웠다.      



나도 내 사고방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었고, 그것 때문에 친구나 지인과 말다툼을 하거나 미운털이 박힌 적도 있었다. 아주 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다투고 나면 기운 빠지고 그렇게 에너지 쓰는 게 아까워서, 인연을 끊더라도 바꿀 수 없는 생각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쟁이 벌어질 법한 주제가 나오면 말을 돌릴 때도 많았다.      


그녀의 이름이 여자로서 수치스러울 수 있는 연관검색어들과 함께 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인 것처럼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그 수많은 인신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절대다수의 한 명으로서 그녀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김숙이 악플의 밤 1회에서 설리에게 물었다.      


-넌 일하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설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 근데 저 올해가 삼재 마지막이래요. 이제부터 진짜 잘 될 거야.       


나는 그녀가 비록 일이 그녀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고,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랬듯 그녀의 시작도 TV를 보며 연예인을 동경하던 것이 첫 시작이었을 것이다.


연예인 할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오디션을 통해 대형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고, 그렇게 데뷔를 하고 나서 자신이 TV를 보며 울고 웃었던 것처럼 대중들에게 그런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12살에 멋모르고 시작한 연예인 생활이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행동 하나하나에 편견과 꼬리표가 붙고, 이유 없는 비난도 이어질 수 있는 일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중들과 만나고 그럼으로써 인정받고 돈을 버는 이 연예인 일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 모든 야유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면 좀 더 영악하게 대중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아이돌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이 판타지에 부합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도 아무도 없다.      


그녀의 별명처럼 복숭아 같은 외모로, 귀엽고 순진한 척 행동했다면 그 정도로 날 선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예쁘장한 아이돌’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자신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리 상점의 마지막 회에서 설리가 말한다.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세계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는 자신을 사람들이 조금만 예쁘게 악의를 갖지 않고 봐주길 원했다.     


우리 모두는 그거 하나를 안 해줬다.     


악플러들이 그렇게 열심히 설치고 물어뜯는 동안,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사실 아무것도 안 했다.


사실 제도도 아무것도 안 했고, 이제 와 생각하면, 그녀의 소속사도 너무 무책임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한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협동해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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