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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05. 2019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죽고 싶었던 사실이 옛날 이야기가 된 나는, 설리를 보며 그녀도 산을 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설리에게는 산이 하나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 산을 넘으면 두 번째 산이, 두 번째 산을 넘으니 세 번째 산이 나타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었다.           


옛날 전래 동화 중에 첩첩산중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잔칫집에서 일을 해주고 떡을 얻어 집으로 돌아간다.      


아주 캄캄한 밤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말한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렇게 떡을 먹고 사라진 뒤, 그녀 앞에 또, 호랑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한다.     


그렇게 고개마다 호랑이는 나타나서 떡을 요구한다.      


그런데 과연 매번 나타난 호랑이가 아까 그 호랑이일까.


아마도 호랑이 눈에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듯, 어쩌면 그녀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매번 새로운 호랑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호랑이는 당당하게 ‘떡 하나만’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호랑이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던 오누이의 엄마는 떡도 뺏기고 몸도 먹히고 말았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그녀를 쫓아다니며 괴롭힌 게 아니다.     

첩첩산중 속 무한대의 호랑이인 것이다.      


설리를 볼 때면, 죽고 싶겠다, 싶은 순간도 엿보였지만, 나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던 한 사람으로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의 마음이 있었다. 비록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죽고 싶은 그 강한 마음도 결국 조금씩 휘발되는 시기가 오니까, 그녀도 저 시기를 헤쳐나가고 잘 지나가지겠지,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야 내가 아무 노력도 안 해도 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은 틀렸고 나는 응원하는 마음에 비해 게으른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응원한다면서 그녀를 위해 내 손가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설리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이 산을 넘고 나니, 설리에게는 다른 산, 더 험난한 산이 있었다.


그렇게 언제까지고 이 산이 끝날지 알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죽고 싶어서 죽었다기보다, 그냥 그 고통이 끝나길 바라며 산을 넘다 넘다 지쳐 허약해져서 탈진해서 숨을 거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들은 여전히 첩첩산중에 숨어 있을 텐데. 숨어서 자기들끼리 약한 인간을 발견하게 되면 꼬투리를 잡아 자기들끼리 공유하고 갖고 놀 텐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더욱 아무렇지 않게 다른 떡을 찾으며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그 손가락으로 밥도 잘 먹고 키보드도 잘 치며 밤엔 잠도 잘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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