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티는 생명단축

그 정도까지는 생각 못 했다

by 시은

그때 나는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이 채 안 된 때였다. 첫 스터디 모임이었는데 서로의 작품을 리뷰해주고 나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다. 누군가 말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전 작가로만 살 수 있으면 딱 50살까지만 살아도 좋을 거 같아요. 반장님은요?


스터디 날짜 잡고, 회비 걷고, 술자리 이어지면 선계산 후 돈 낼 거 1/n해서 분배해주시던 총무 같은 분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장님이라 불렀다. 지금 내 나이보다 2-3살 많으셨던 거 같은데 정확히는 모른다.


-저는 제나이 감안해서.. 그래도 60살까지는 살고 싶은데요. 20년 정도는 작가로 살아보고 싶어서요.


그러자 다들 자신이 생각하는, 작가가 된다면 죽어도 좋을 나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왜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말하고 있으니 나도 생각을 해보긴 했다.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안 물으면 말 안 할 생각이었는데 다들 말하고 나만 남아서, 누군가 물어봐주었다.


그런데 물어본 타이밍이, 이 작가라는 직업이 누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가 작가가 되는 대신 수명을 대가로 지불하고 획득하는 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 정도밖에 미치지 못 했는데 물어본 것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당황했다. 내가 작가가 되고 나서 죽고 싶은 나이는 언제인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해서 생각난 데까지만 얘길 했다.


-제가 작가로 살고 싶다고 몇 살에 죽을 걸 정한다고 해서 작가가 반드시 되는 것도 아닌데, 전 그냥 안 정할래요...


사실은 심사숙고해서 정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물어보셨다. 그래서 대답이 저렇게 나가버렸다. 저 말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한다, 시간을 벌어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어서 한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되면 좋은 거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목숨까지 걸 건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봤자 직업 중에 하난데.


라고.


당연히,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데 어떡하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사람들 표정이 다들, 아, 그렇지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살짝 찬물을 끼얹은 것 분위기도 조금 섞이고.


나 역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강렬했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선택한 이 독립적이고 생활비 많이 들고, 집안일 많은 생활을 시작하고 또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작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작가로 살다가 남들보다 적게 사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닌데 그런 자리에서 너무 냉정하게 말한 것 같았다.


누군가 그 침묵을 깼다.


-시은씨는 작가 별로 안 되고 싶나 봐요.


글로 써놓고 보니 까칠해보이는데 저 말을 한 분이 그렇게 까칠하게 말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작가가 되겠다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거나 주말에 놀지도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내가 한 말이 나만 어떠한 희생도 없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모양새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건 아닌데요. 우리가 쓰는 시나리오라는 글은 진짜,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수십, 수백명 스텝이 움직이는 일이고, 단순히 내 시나리오가 영화화 된다, 내 꿈이 이루어진다, 이게 중요하다기보다, 몇 억씩 투자받아서 합쳐져서 제작이 들어가는 거고, 제작비가 몇십억, 많게는 백억, 진짜 만약에 그 중에 누군가는 그 영화에 전 재산 투자했을 수도 있는 일인 거잖아요.


근데 제 꿈이 투자한 사람들의 재산보다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저한테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저한테는 그걸 단순히 내가 되고 싶다! 꼭 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기보다, 그냥 그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거기에 나라는 사람이 쓰일 수 있도록 되어야겠다, 그걸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 그래서 대기업 과장만큼은 벌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인데요. 그런 마음이라도 안 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에요. 별로 안 열정적이게 보일 수는 있지만.



작가가 되면 감수할 수 있는 패널티로 생명단축을 선택할 생각을 하다니. 다른 건 몰라도 나 스스로 생명단축을 선택할 생각은 못했는데. 안 그래도 다른 직업군보다 평균 수명이 짧기도 하고.


나한테, 바늘만한 틈도 안 준 세계지만 그렇다고 오만 정이 다 떨어진 건 아니다. 한달에 2-3번 직접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꿈을 이뤘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로도 이제 나는 충분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지금 그때 일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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