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맞지 않더라도

멋있는 건 멋있는 거다

by 시은

일을 하는 여자인 지금이 좋다.


그냥 여자인 거 말고, 일하는 여자인 게 좋다.


작가 지망생으로 수입이 없이 사는 여자일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 물론 수입이 지금보다는 넉넉했으면 좋겠지만.


내가 올 5월에 입사한 지금 일하는 곳의 대리님은 나이차이가 1살 밖에 나지 않는다. 근무한 햇수는 올해 6년이 된다고 한다.


올해 4월에 그만둔 직장 팀장님도 나와 나이차이가 1살이었다. 팀장님이 이 회사에 근무한 햇수는 7년차라고 했다. 사실 이 팀장님과 잘 맞지 않아 2월에 입사한 회사를 4월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 분이 일부러 그러셨던 건 아니라는 건 안다. 다만 일을 가르쳐줄 때 말하는 방식이 내가 긴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 있었다. 내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여쭤보면,


-시은씨, 저 같은 말 여러 번 하는 거 되게 싫어해요. 진짜 이게 기억 안 나요?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을 잘 하고, 어떤 일은 더디고 하는, 사람마다 어떤 일마다에 따른 속도가 있다.

그 더딘 일이 생각보다 더 더뎠고 그게 그 분한테는 답답했을 거고, 그러다 보니 나와버린 말 중에 저 말이 있었다.


입사한지 몇 주 안 되어서 모르는 게 많았다. 입사시기가 설이 지나간 주부터여서 그동안 쌓인 업무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제 막 업무관련 지식을 일주일 배우고 곧바로 일을 하게 된 나로서는 생각보다 물어볼 게 많았다.


입사 전에 면접 때는 누구나 실수한다고, 직원 선에서 처리 못하는 업무는 원래 상위 부서에서 처리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콜센터라는 게 원래 고객들이 문제가 생기니까 연락을 하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전화를 걸 때가 많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도 있지만, 하다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댈 때는 그걸 직원보고 해결하라고 떠넘기지 않으니까 너무 긴장해서 일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당연히 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얼마 안 되어 실수를 했고, 상위 책임을 맡은 팀장님이 그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쭈그러져서 내가 어떤 부분에 실수가 있었는지 듣고 있는데, 갑자기 실수를 설명하시다 말고,


-시은씨, 진짜 이럴래요? 저 노는 것처럼 보여요? 저 일하러 회사 나온 거예요. 시은 씨 때문에 제 일이 계속 밀려요.


그 말이 조금 뾰족하게 느껴져서,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결국 물어볼까 물어보지 말까 고민하다가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방법을 끙끙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다. 나중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업무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되어 여러 번 확인하게 되었다.


한번은 내가 그러는 게 보이셨는지 과장님이 팀장이 정 바빠보이고 급한 질문이면 아무한테나 물어봐도 된다고 하셨다. 실제로도 같이 일하는 선배 직원 분들이 편하게 물어보세요, 해서 물어서 해결한 적도 있지만, 그 분들도 자신의 코 앞에 있는 일이 있는데 언제까지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 모르면서 스스로 해결하려다 보니 업무속도가 늦어졌고, 그런 습관이 노이로제에 가까워져서 별 거 아닌 일조차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을까봐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 그 분께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얘기를 했고, 팀장님도 자신이 맡은 업무가 너무 많고, 계속 새로운 일이 생기고, 아기가 있다보니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고, 퇴근 전에 일을 다 해야 되다 보니까,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다고 말씀해주셨고, 서로 노력해보자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주셨지만, 결국 내 마음의 짐이 너무 커져버린 상태였다. 일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았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입사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만 두어야 할지 좀 더 노력해야 할지, 회사 내에서의 이런 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인들에게 술을 마시며 한탄하듯 많이 털어놓게 되었다.


-니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그게 왜 니 잘못이야. 입사한지 이제 한달 만에 관두고 싶다는 거면, 결국 신입이다가 관둔다는 거잖아. 새로 뽑은 사람 자리 잡을 수 있게 배려하는 것도 회사 일이다?


-들어온지 한 달 남짓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을 능수능란하게 잘 할 거라고 물어보는 거 갖고 뭐라고 해. 가르치는 것도 그 분 업무일 텐데, 팀장님이 잘못했네. 그 정도 기간은 다 업무습득 기간이고, 원래 다 처음에는 모르는 거 투성이지.


지인들은 단호하게 팀장님이 잘못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정확히 누가 잘못했다고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지인들은 내 편을 들며, 그냥 둘 중에 누가 더 힘들면, 쌍방과실이 아니라고 했다.


힘든 사람이 잘못 한 게 아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잘못이니까 감싸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만둬서 이제 마음이 평온해져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분이 그렇게 싫거나 원망스럽지 않다.


다니는 동안 그 분 때문에 힘들어한 건 맞고, 팀장님한테는 팀장님 때문에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팀장님 때문에 그만둔 게 맞다.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았고, 삶의 방식에서도 따라하지 못할,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아니다.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고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존경하고 있다.


이 회사의 출근은 8시 40분 까지였다. 나도 근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2달 동안 거의 첫번째나 두번째로 출근을 하곤 했다. 그런데 팀장님이 더 일찍 나오시는 날이 있었다. 7시 반에 출근했다고 하셨다. 오후가 되면 당연히 업무가 쌓이니까 상호 조율 없이 그냥 처리가능한 일은 미리 해놓으려고 그렇게 나오신다고 했다. 그래도 일이 쌓이긴 했지만.


팀장님은 아기가 만3세였는데 그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하셨다. 퇴근 후 엔 남편과 번갈아 픽업을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가 간혹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내용도 솔직히, 멋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저렇게까지 일과 사랑, 혹은 일과 가정 두 가지 일을 둘 다 잘 해낼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는 시간에는 미친 듯이 일을 하는 게 대단해 보였다.


물론 나 같은 신입 가르치는 것도 그 분의 주요 업무 맞지만, 사실 나 같은 사람보다는 확실히 이런 팀장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은 게 사회적으로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내가 그만둔 건 그 분 때문이지만 그 분이 원망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지금 이직한 직장이 잘 맞기도 해서 지금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게 큰 거 같다. 일을 하고 수입이 있는 여자로 사는 지금이, 꿈이 있는 여자로 살 때보다 좋다.



#고양이는 귀여운 게 일인 거 같다. 한창 일하고 있는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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