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나서
어릴 때 나는 뭔가 감자처럼 생겼었다. 스스로 특별히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예쁘지 않다는 것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느날,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할머니가 말했다.
-누구한테 잘 보일 생각하지 말어. 자기 자신한테 잘 보이는 게 제일 중하다.
그 때 나와 동생은 주로 할머니집 근처에서 놀았는데 그 동네는 남자애들이 많고 여자애는 나뿐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데 동생은 잘 끼워주는데 나는 끼워주지 않자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체력이 달리는 것도 아닌데 놀아주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예쁘지 않아서 놀아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할머니는 내 상황을 용케 아셨다. 내 마음까지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쭈그러져 흙장난을 하고 있다가 멀리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한번 다 모였을 때, 그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셨다. 나는 할머니가 내 근처에 있는 것도 몰랐는데 대뜸, 물으셨다.
-느들, 왜 얘랑 안 노냐.
-그냥요. 쪽수도 안 맞고.
-야 이놈들아, 십년 정도만 지나봐라, 한심한 놈들, 네놈들 녀석이 놀고 싶어도 같이 못 놀 정도로 꿈도 못 꾸게 예뻐질 애가 아직 뭘 몰라서 너네랑 같이 놀려고 하면 절이라도 하면서 같이 놀아야 할 판에, 끼워주지 도 않고, 지금 하는 게 똑똑한 짓 같아 보이냐?
이렇게 호통을 치셨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십년 정도 지난다고 내 외모가 딱히 업그레이드가 될 거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할머니가 먼 미래라고 너무 근거 없이 말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때 가서 얘들이 할머니와 나에게 따지면 어떡할 것인가. 증거라고 남을 건 없지만, 증인이 이렇게 많은데.
외모가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십년보다 좀 더 걸리긴 했지만 내 외모에서 감자 같던 느낌은 사라졌다. 꾸며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전제조건만 충족되면 내 외모는 꽤 괜찮아진다. 아닐 때도 있지만.
괜찮을 때든 아니든 나는 내 어떤 모습이든 다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단언컨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한테 잘 보일 생각만 하라고,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 많은 5-6명의 아이들 앞에서 내가 예뻐질 거라고 큰 소리로 할머니가 말해버렸기 때문에 나도 그게 무슨 주술이 걸린 것처럼 내가 예뻐질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믿기만 한 건 아니고, 틈틈히 감자스러움을 벗기 위한 노력도 같이 하긴 했다. 덕분에 이제 감자스러움은 없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도 내 곁에 없다.
어릴 적 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들은 얘기나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해드리면 눈이 동그래져서 들으시고는 너는 천재라고 그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칭찬해주셨는데.
내가 만든 얘기가 아니고 듣거나 읽은 얘기라고 하면, 그걸 지금껏 다 기억해서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또 천재라고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셨었는데.
할머니한테 이야기로 칭찬받았던 경험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내가 너무 늦되선지, 할머니가 너무 급하게 떠나신 건지 모르겠다.
감자 비슷하게 생겨서 찍어봤다. 사실은 치즈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