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왕후에서 명성황후까지
고교 및 대학교 친구 중에 암기력이 좋았던 민 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있다. 편의상 민친이라고 하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민친 혼자 전교에서 국사 시험을 100점 받았다. 시험문제를 꽤 꼬아서 냈던 거 같다. 국사선생님도 인정했다.
국사선생님 성함도 기억난다. 평범했으면 기억 안 났을 텐데 성함이 조자, 삼룡이었다. 일으켜 세워서 너 혼자 국사 만점 받았다고 말하며 물으셨다.
-너, 역사 좋아하니?
그 친구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부러웠다.
고3 때 그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민 씨는 본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성인 김 씨는 가장 흔한데 그 와중에 본도 무척 많다. 경주 김 씨, 안동 김 씨, 여하튼 많다. 나는 흔한 김 씨, 그중에 또 가장 흔한 김해 김 씨다.
민 씨는 여흥 민 씨, 하나다. 드라마에서는 가끔 높여부를 때 왕여 민 씨라고도 하는데 왕족 여흥을 줄여 부른 것이다. 옛 어른들도 우리처럼 줄임말을 쓰실 때가 있었던 거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예전에 사극 소재의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사료 조사차 조선왕조실록을 꽤 탐독한 적이 있다. 물론 내 취향이 적극 반영된 키워드에 따라서 탐독해서 넓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다 이방원의 아내, 훗날 원경왕후가 된 그녀의 이름이 민 다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명성황후 역시 민자영(이건 소설 속 이름이라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도 민 씨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원경왕후 그녀부터 명성황후 그녀까지 한 핏줄인 것이다.
이방원은 원경왕후가 정치적 의견을 내는 걸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법한 남동생 4명, 민무구, 민무휼, 민무질, 민무회 모두 역모죄를 씌워 죽였다. 모두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절대적 지지를 한 처남들이었다.
그 정도로 경계했으나 440여 년이 흐르고 결국 조선의 마지막 운명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명성황후의 영향력이 많이 개입되었다. 흥선대원군이 한미한 집이라고 고르고 고른, 왕비 쪽의 정치세력이 결코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고른 왕비였으나 그건 그의 오판이었다.
원경왕후의 원한이 아주 먼 훗날의 자손인 명성황후에게까지 연결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두 사람이 한 핏줄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대단하고 신기하다.
한동안 차이나는 클라스 안 봤는데 오늘 집에 가서 맥주 마시며 몰아서 봐야겠다, 생각하고 검색해 보았는데 때마침 저번주부터 역사 특집이라서 다시보기할 생각하다가 한 핏줄인 그녀들 생각이 났다.
TV 재미있게 보자고 역사 공부한 건 아니지만 역사는 뭐라도 조금만 더 알아도 훨씬 더 재미있다. 이번 주 차이나는 클라스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