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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미워하는 건

나쁜 짓일지도 모르지만

by 시은

그게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어쩔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다.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던가.


약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기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싫다. 약점이 꼭 극복해야 할 대상인 건 아니지만 그게 또 상대방을 반드시 배려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게 나는 잘 납득이 안 된다.


20대 때 친한 친구들 중에 선을 넘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관심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성향이지만, 친구의 튀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런 친구들 특유의 장점도 있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참다가, 어느 날엔 참다못해 조목조목, 내가 생각해도 좀 다다다다 따질 때, 이런 답을 하는 친구들을 종종 봤다.


-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혹은 엄마) 사랑을 못 받아서, 애정결핍이라 어쩔 수 없어. 니가 좀 받아주면 안 돼?


나도 우리 엄마 사랑 못 받았다. 어린 시절, 드라마를 보다가 위험에 빠진 딸을 구하려고 미친듯이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내가 죽으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 같냐고 물어봤다가 꿋꿋이 살아야지 뭘 어쩌라는 거냐는 대답을 들었다. 심지어 내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답해주신 걸 보면 엄마 스스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갖고 계셨던 것 같다.


학대받은 건 아니지만 사랑받은 느낌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배려 해달 라거나 나는 이러니 네가 좀 받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엄마 사랑을 못 받은 게 솔직히 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당당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 술자리 경험상 누가 됐든 조금만 속 깊은 얘기를 해보면,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이런저런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소한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부모님과 크건 작건 갈등이 있었다.


다들 있지만 꾹꾹 참거나 그 절반인 꾹 참거나 아니면 가끔 술을 먹고 그 서운함을 토하지, 그게 무슨 사회적 차원에서 배려받아야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배려받으면 고마워할 수야 있지만 배려를 강요하는 게 나는 요즘도 불편하다.


나 같이 까칠한 친구한테는 냉정한 소리도 듣고 좀 더 따스한 친구한테는 배려받으며 그렇게 성장하는 거겠지만, 결코 성장 안 할 수도 있을 거 같은 흔적들을 종종 발견한다.


제발 마음속의 그 어린아이가 성장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애들은 애들끼리 놀던가.


네일도 잘 되고 우연히 집은 책 뒤에서 마음에 쏙 드는 구절도 만나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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