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작가 지망생 치고 나는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하기 싫어한다.
그냥 어떤 걸 좋아하고 싶지 이 영화는 이래서 안 좋아요, 이래서 좋은 영화예요, 이렇기 때문에 좋은 책이에요 평가하거나 강요하기 싫기 때문이다. 강요받기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안 한다는 뜻은 아니다.
너무 좋거나 하면 쓰지만 그건 어차피 내 생각일 뿐이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안다.
5년 가까이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세계 고전을 읽었다. 그렇게 독서의 의무를 실행했던 시기를 통과하고 좋아진 건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가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헤밍웨이가 싫다. 죽도록 노력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노인과 바다>의 내용이 싫다. 그게 삶의 진실이며 훌륭하고 교훈적이라 해도 싫다.
<헤밍웨이 단편선 1,2>의 단편소설들의 대부분은 <노인과 바다>를 연습하기 위한 소설들로 낚시를 묘사하는 장면이 대부분으로 그게 그 내용이다. 줄거리라고 할 게 없다.
진짜다.
자신의 문장 표현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그 비슷한 내용을 제목만 바꿔서 끊임없이 발표했다는 사실도 그를 싫어하는 이유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읽을 게 없어서 죄 없는 독자들은 그거라도 읽으려고 기다렸다는 게 안쓰러울 뿐이다. 부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그녀의 잘못 때문에 헤어졌다고 글을 발표한 것도 그를 싫어하는 이유다. 헤밍웨이 자신이 다른 여자랑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거면서.
나는 헤밍웨이의 신간이 나오면 아무리 홍보해도 믿고 거른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좋다. 그가 어린 아들이 읽기를 바라서 소설을 썼다는 것도 좋고, 그 내용 중에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좋다.
아니, 저 이유들을 다 집어치워도 그의 소설은 다 재미있다.
요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주 추천받았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저 책이 맞을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저 책이 싫다.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평화로움 가득한 이야기가 졸리고, 초반에 조금 읽어봤는데 별거 없어서 싫다. 그 와중에 그렇게 긴 분량인 것도 싫다. 내 시간, 1분 1초가 소중한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으면 여태까지 잃지 않았던 내 아까운 시간을 저 소설 때문에 잃을 것만 같다.
그리고 좋은 것을 확실히 아는 것보다, 싫은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은 책이나 영화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자주 보여도,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싫고, 필요하거나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문학적으로 중요해도 나에겐 생존에 필요한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내 시간이 나에게는 그 어떤 문학적 가치보다 소중하다. 내 시간을 잃기 싫어서, 읽기 싫다.
얼마전에 갔던 독서모임. 분홍노트는 모임선물이다.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도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