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은아티스트 3명의 음반 3장
도처에 죽음이 산재해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아니 어쩌면 지난 몇 년간, 이른지 모르고 찾아온 많은 사건, 사고들. 재발하지 않을 줄만 알았던 지킬 수 있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자주 무기력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음악의 역할을 떠올리고, 음악이 중심이 된 무대의 의미를 재고해봅니다. 왜 어떤 일들 앞에서 음악은 추모의 자리를 제일 먼저 빼앗기게 되는 것일까요? 세상에 많은 감정이 존재하듯 음악이 품은 감정 역시 다양합니다. 음악을 통해 각 개인이 경험하는 감정의 폭 또한 깊고 넓을 것이고요. 죽음을 노래하며 위로를 건네는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아티스트가 말하는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 그리하여 회고하게 되는 지금 발 디딘 이 세상의 의미를 풀어보았습니다.
캐나다 뮤지션 위켄드(The Weeknd)는 자주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공개 연애를 했던 연인과 몇 차례 이별을 겪고, 그 사랑의 상흔을 [My Dear Melancholy] 혹은 [After Hours]와 같은 음반에 짙게 녹여내기도 했죠.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끈 ‘Call out my name’이나 ‘Blinding lights’, ‘Save your tears’가 그 대표 격입니다.
2022년 발매한 [Dawn FM]은 다른 의미에서 사랑을 풀어냅니다. 외부로 향하던 사랑의 방향을 우회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은 ‘103.5 Dawn FM’ 즉, 라디오 방송과 함께 해설됩니다. 이 음반은 죽음 이후 천국으로 향하는 빛 혹은 길을 Dawn FM이라는 라디오가 중계해준다는 콘셉트로 짜여있습니다. ‘Gasoline’이란 곡에서는 ‘아직은 더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걸 믿게 해 달라’고 외치고, ’Every angel is terrifying’이란 노래로는 이상적인 천국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삶을 사랑하자 은유하는 식입니다.
16개의 수록곡 사이사이 진짜 라디오와 같이 짧은 광고 등을 넣어 죽음, 삶, 현재를 사유하는 무거운 음반의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레트로한 질감의 신스팝 장인답게 ‘Take my breath’ 등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댄스팝 기조 역시 죽음 너머에 있는 음반의 메시지를 부드럽게 즐기게끔 돕습니다. 위켄드의 음반으로 천국으로 향하는 그 과정을 사유하며 나의 존재 가치를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3년 오디션 프로그램 <K-POP STAR 2>에서 처음 등장한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은 그야말로 센세이션 했습니다. ‘다리꼬지마’, ‘라면인건가’ 등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재치발랄’한 가사를 섞어 듣는 이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안겨주는가 하면 이후 선보인 ‘얼음들’, ‘오랜 날 오랜 밤’ 등에서는 그들만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리스너의 마음을 데워주었죠.
8년간 악동뮤지션 혹은 악뮤(AKMU)로 항해한 끝에 올해 처음 이찬혁의 솔로 음반 [ERROR]가 발매됐습니다. 작품은 과연 그간의 기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ERROR]는 한 인물이 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 당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착실하게 좇아갑니다. 내가 죽는 순간을 빳빳한 일렉트릭 기타 반주 위에서 서술하는 ‘목격담’, 사고 현장에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주목한 EDM 중심의 ‘Siren’, 사랑했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순간을 노래하는 ‘파노라마’ 등 앨범은 찰나의 죽음을 11개의 수록곡을 통해 따라갑니다.
이찬혁이 그리는 죽음은 성대하거나 웅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한 어조로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떠올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말로 삶의 아쉬움을 대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 담백한 속에서 어떤 번뜩이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회색빛 삶에 색을 입히는 따스한 시선입니다. 죽음을 말하는 이 음반에서 살아갈 위로를 발견한 것인데요. 여러분은 이 음반으로 어떤 마음들을 건져 올렸으지 궁금합니다.
뮤지션 에이트레인은 2020년 발매한 첫 번째 정규음반 [PAINGREEN]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었다”고 말합니다. 과거형으로 답한 인용문에서 다행히 현재 그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눈치채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그는 잘 살아 남아 지난 9월 두 번째 정규 음반 [Private Pink]를 내놓았습니다. Green에서 Pink로. 죽음에서 생으로. 글감이 변화하는 동안 과연 그는 어떤 것들을 경험했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PAINGREEN]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품에는 직간접적인 죽음에 대한 언급이 가득합니다. ‘Suicide’ 즉 자살과 비슷한 발음의 수록곡 ‘Sweet Side’가 그렇고, ‘우리가 불 속에 놓고 온 것들’은 어렵지 않게 ‘화장’을 유추하게 합니다. 적나라한 제목의 ‘추모’는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짙은 어둠을 간직한 곡이기도 하고요. 음악가 스스로 “듣는 이와의 거리를 너무나 좁혀버려 오히려 상대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할 만큼 자기 고백적인 앨범입니다.
그 짓이겨진 상흔을 불순물 없이 고백한 후, 즉 죽음을 이겨낸 후, 그는 [Private Pink]로 조금 더 구체적인 개인사를 노래합니다. 먼 거리에서 관조하던 아픔, 우울, 죽음을 지나 한층 더 세밀하게 내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죽음으로 가닿던 음악적 마침표가 쉼표로 바뀌었고 군데군데 죽음에 닻 내리지 않은 밝은 기조의 선율이 흐르기도 합니다. 두 작품을 연이어 들으며 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한 아픔과 연고를 바르고 후후 입김을 부는 듯한 위로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음악입니다. 죽음이 이토록 각색의 모양으로 펼쳐지는 오늘날, 저마다 각자의 음악으로 추모하고, 생을 다시 태우고, 눈물을 모아 손을 맞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빼곡한 음표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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