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플러스 매거진 기고
불볕더위의 여름이 찾아왔다. 4계절 중 여름만큼 여성 뮤지션(들)의 활동이 몰리는 시기가 또 있을까. 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니다. 여름이어야 한다. 여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 예를 들어, 뜨거움, 내리쬐는 햇빛, 그을린 피부, 땀에 젖은 옷가지(그에 따른 약간의 노출). 조금 강한 표현이지만 여성들의 음악을 안정적으로 팔 수 있을 많은 요소가 바로 이 계절, 여름에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썸머퀸은 있어도, 썸머킹은 없다. 그렇다면 왜 여름은 여성 음악의 셀링 포인트와 연결되는가.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부터 원래 그랬다. 여성의 주체성을 노래하는 그룹들의 수가 늘어난 지금에야 여성이 동성 아이돌의 팬을 자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지만 H.O.T.나 지오디(god) 혹은 그 이후 더블에스501 (SS501), 동방신기 (TVXQ!) 등이 큰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아이돌과 팬의 구조는 이성적 판타지에 따라 움직였다.
다시 말해, 여성 팬과 남성 뮤지션, 남성 팬과 여성 뮤지션이라는 이성(애) 기반 커뮤니케이션이 음악 판매의 기본이었다. 이 관계 안에 여름을 다시 소환해 보자. 청량함, 건강미, 시원함 등의 단어 사이 적당한 노출을 녹여 발매한 수많은 썸머퀸의 음악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효리의 ‘10MINUTES’, ‘U-Go-Girl (With. 낯선)’을 경유해 씨스타(Sistar)의 ‘Touch My Body’, 브레이브 걸스(Brave girls) EP [Summer Queen]의 타이틀 ‘치맛바람 (Chi Mat Ba Ram)’ 등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판매함에 있어 ‘썸머퀸’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물론 ‘빨간 맛 (Red Flavor)’, ‘짐살라빔 (Zimzalabim)’, ‘음파음파 (Umpah Umpah)’를 부른 Red Velvet (레드벨벳)처럼 비교적 달콤하고 말랑한, 구태여 지적하자면 성적 은유를 노래에 심지 않은 채 썸머퀸을 자처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예외일 뿐이다. 명백한 것은 썸머퀸은 여성 음악을 쉽게 이해시키고,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하게 하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오랜 시간 자리해 왔다. 2023년 ‘워터밤 페스티벌의 레전드’ 권은비가 대중에게 회자되는 방식 역시 이 과정 아래서 해석된다.
가디건을 살짝 걸쳐 묶고 관객들이 쏘는 물을 맞으며 ‘Underwater’를 부른 권은비가 가장 먼저 쟁취한 단어는 ‘워터밤 여신’이자 ‘신흥 썸머퀸’이었다. 그에게 부여된 이 두 별명 사이 수많은 시선, 관습, 메시지 등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게 또다시 찾아온 여름. 여러 여성 뮤지션이 썸머퀸을 다시 한번 음악 앞에 세우기 시작한다. 그중 유난히 두 그룹이 눈에 띈다. KISS OF LIFE(키스오브라이프)와 (여자)아이들.
2023년 동명의 미니 1집 [KISS OF LIFE]를 발매하며 데뷔한 이들은 신보 ‘Sticky’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쉿 (Shhh)’, ‘Midas Touch’와 같은 싱글로 복고적인 요소를 부각했다면 이번에는 ‘썸머 앨범’을 지향했다는 음반 설명만큼이나 ‘핫(hot)’한 모양새다. 아프로비트를 기반으로 사운드의 기틀을 잡고 그 위에 매력적인 현악기를 녹여 중심을 잡은 이 곡은 발매와 동시에 많은 관심을 받으며 음악 방송 1위는 물론 KISS OF LIFE(키스오브라이프)에게 커리어 최전성기를 안겨준다.
노래의 핵심은 퍼포먼스다. 폴란드에서 원테이크 방식을 활용해 찍은 뮤직비디오가 큰 관심을 받았는데, 곡의 호오를 떠나 화제가 된 건 선정성이었다. 멤버들의 옷차림에 노출이 많고, 트월킹을 추는 춤사위 등이 필요 이상으로 야하다는 것이 논란의 이유였다.
드러내되 적당히 가려야 하는 이중적 기준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는가 했지만 어쨌거나 KISS OF LIFE(키스오브라이프)의 응대는 명석했다. 퍼포먼스의 우위에 선 것. 선정적으로 읽는 이들의 시선이야 그들의 것으로 놔두고 음악 방송을 누비며, <HAVE A NICE TRIP 2024>, <RAPBEAT 2024> 등 페스티벌 현장으로 활동지를 넓혀 논란을 정면으로 격파했다. 당찬 썸머퀸의 탄생이다.
이와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선정성 논란에 맞부딪혀 왔다. 성적 함의가 가득한 가사가 매번 잡음을 일으켰다. ‘배웠으면 너도 한번 올라타 봐‘라며 노래하는 ‘Wife’나 곡 제목부터 아슬아슬한 ‘Nxde’가 꼭 그랬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논란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탄탄하게 그룹 정체성을 다져간다. 많은 여성을 임파워링하게 한 ‘Tomboy’나 ‘Super Lady’의 존재는 이들이 정확하게 어떤 청취층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만드는지 증명한 곡들이다.
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여자)아이들이 빠르게 대중에게 흡수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곡의
표현이 불편할 지라도 누구에게나 쉽게 소화되는 멜로디에 강점의 강점 덕분이다. 썸머 댄스곡을 자처한 신보 ‘클락션 (Klaxon)’이 딱 그 흐름 안에 위치한다. 캐치한 멜로디 라인과 복고적인 브라스 등을 적극 사용해 올해 초 큰 사랑을 받은 비비(BIBI)의 ‘밤양갱’만큼 쉽고 편안한 후크송을 만들어냈다. 익숙한 방식으로 썸머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은 다른 의미로 범대중적인 썸머퀸을 택한 이들의 선택이 반갑고도 영리하게 느껴진다.
썸머퀸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다. 누가 어떻게 썸머퀸이 될 것이냐 하는 과제가 매년 음악 신에 당도하는 지금. 조금씩 새로운 썸머퀸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다. 썸머퀸의 적극적인 전유가 더욱 크게 판을 키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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