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으로 세대를 아우르다.
힙합으로 세대를 아우른 ‘다이나믹 듀오’
어느덧 데뷔 18년 차다.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할 동안 우직하게 우리 곁을 지켜 온 다이나믹 듀오, 그들은 너른 세대를 아우른다. CB Mass의 획기적인 등장을 CD 플레이어로 함께했던 20대부터, 다이나믹 듀오의 중흥기를 이끈 MP3 세대, 그리고 [무한도전 가요제], [쇼 미 더 머니] 등에 출연해 익살스러운 면모 사이 인간적인 교훈을 녹인 그들에게 매료된 스트리밍 세대까지. 다이나믹 듀오는 결코 대중의 곁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위기를 기회로 뒤바꾼 ‘Ring my bell’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랩을 시작한 최자, 개코는 2000년 힙합 그룹 CB Mass를 통해 첫 정규 음반 <Massmediah>를 발매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당대 주류 음악 소비층이 서태지를 비롯한 아이돌 문화에 빠져있었다면 CB Mass의 등장은 인디와 대중 사이의 교집합 역할을 하며 힙합을 한국의 입맛 중 하나로 완전히 정착시켰다. 물 밑 헤엄을 하던 흑인 음악이 업타운, 드렁큰 타이거, 지누션, 가리온 등을 거쳐 CB Mass로 항해하며 대중음악 역사의 한자리를 꿰찬 것이다.
정규 2집 <Matics>(2001)는 이러한 행보에 불을 붙인다. 미국 출신 R&B 그룹 스피너스의 1992년 히트곡 ‘I’ll be around’를 샘플링한 ‘휘파람’은 편안한 선율과 쉬운 가사로 다시 한번 힙합 대중화의 최선봉에 섰고, 드렁큰 타이거, 타샤(윤미래), 인세인 디지 등과 함께한 'Movement 3'는 힙합 크루의 에너지를 처음으로 세상에 각인시킨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3집 제작을 즈음하여 퍼진 불화와 해체설이 음반 발매와 동시에 사실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리더의 자금 횡령. 24살의 나이에 맛본 첫 번째 시련이었다.
1년의 재정비 후 ‘다이나믹 듀오’란 그룹명으로 첫 번째 정규 음반 <Taxi Driver>(2004)를 출하한다. 재기는 성공적이었다. 나얼의 피처링을 덧댄 ‘Ring my bell’은 여러 케이블 음악 방송에 연이어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역시나 바비킴 피처링의 ‘불면증’은 청춘의 복잡다단한 정서를 쓰다듬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혼자보다 둘, 둘보다는 셋, 셋이 같이 뭉쳐서 CB Mass”였던 노랫말을 “셋보다 나은 둘 최자 개코니까”로 끝낸 수록곡 ‘이력서’의 통렬한 마무리는 그들의 복귀에 명쾌한 경종을 울렸다.
이후의 행보는 더욱더 거침없었다. 정규 2집 <Double Dynamite>(2005)는 그룹 특유의 재치 넘치는 곡 진행과 지질하기보다는 진지한 한탄, 외로움이 서려 있는 가사로 20, 30대의 큰 공감을 샀다. “철없던 때로 I wanna go back” 울부짖던 타이틀 ‘Go back’은 음반의 대표곡으로 발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고, 시원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달라지는 것 없이 반복되는 매일에 대한 우울함을 풀어낸 쫀쫀한 래핑의 ‘파도’ 역시 앨범의 숨은 감초다.
2년의 준비 후 발매한 3집 <Enlightened>(2007)는 “우리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축되는 대국민 대동단결 소통(?) 트랙 ‘출첵’, 사랑의 복잡성에 대해 토로하는 ‘복잡해’로 명맥을 이었으며, 이는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등으로 과거 샘플링 위주의 작법에서 탈피해 힙합에 새 장르를 담아 변화를 준 4집 <Last Days>(2008)에서도 문제없이 이어졌다. 줄줄이 곶감처럼 달려 나오는 히트곡의 ‘Solo’, ‘Don’t say goodbye’, ‘어머니의 된장국’, ‘Good love’까지 대한민국 청년층 중 그들의 영향력을 벗어난 청춘은 몇 없다.
-공백기와 인생의 변화,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
‘잔돈은 됐어요’, ‘왜 벌써 가’ 등의 히트곡을 배출한 정규 5집 <Band Of Dynamic Brothers>(2009)를 끝으로 풍자, 유머, 젊음, 사랑 코드를 적절히 배합하며 달려온 그룹은 신보 발매 6일 만에 동반 입대를 한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가장 긴 공백기가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음악 활동 외에도 자립으로 세운 소속사 ‘아메바 컬쳐’의 대표로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음악 신까지 돌본 그들에게 내린 첫 번째 단비 같은 휴식이었다.
결과론적으로 공백기는 더 큰 성장의 발판으로 자리한다. 2011년 제대 3개월 만에 재개한 정규 6집 <DYNAMICDUO Digilog>의 시동은 개코에게 그간 피처링 진에게 넘겼던 멜로디 라인을 맡기며 변화를 개척했고, 7집 <Luckynumbers>(2013)의 머리 곡 ‘BAAAM’은 데뷔 14년 만에 첫 공중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또한, ‘이력서’, ‘Go back’, ‘파도’와 같은 젊음의 불안함을 설파하던 이들이 ‘막잔하고 나갈게’,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를 부르며 성숙한 어른의 씁쓸함까지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아메바 컬쳐의 사장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정규 8집 <Grand Carnival>(2015)은 처음으로 전곡 외주 제작 즉, 모든 수록곡을 다른 음악가의 비트로 채워 트렌드를 좇았고, 2017년 엑소의 첸과 함께한 싱글 ‘기다렸다 가’는 “힘들 때 아플 때 그냥 더 서럽게 울어도 돼” 외치며 또다시 지상파 방송국의 1위를 거머쥔다. 이로써 그들은 힙합 뮤지션 최초로 3사 음악 방송 1위 트로피를 모두 챙기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과연 이토록 오랜 시간 대중의 곁에서 사랑받고, 끊임없이 회자되고. 현재까지 불리는 노래를 발표하는 음악가가 얼마나 될까.
-세대 통합의 가능성, 또 다시 출발점으로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히트곡을 배출했다. 한 앨범도 빼지 않고 앞의 한 줄을 대면 뒤의 몇 줄은 쉬이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재기발랄한 가사와 선율, 그리고 젊음의 고통, 성인의 외로움을 극복 보다는 그저 공감해주는 그들의 동네 형 같은 자리지킴은 CD 플레이어에서 MP3로 또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며 세대를 통합했다.
흔히들 음악 시장의 세대 분리를 말한다. 과거 조용필의 음악처럼 엄마와 아빠와 딸, 아들이 함께 듣고 부를 대중음악이 부재한 작금의 시대에 음악 신은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능성을 본다. 아주 넓은 세대를 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난 18년 간 다이나믹 듀오의 그늘 아래 놓인, 그들의 음악적 녹을 먹고 자란 지금의 청춘들에게 혹은 마음만은 청춘인 그들에게 그룹의 존재는 언제까지고 곁에 두고픈 친구이자 선배일 것이다. 며칠 뒤 정규 9집 발매를 앞 둔 그들의 귀환이 기대되는 이유다. 다이나믹 듀오는 또 다시 출발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