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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Sep 21. 2020

공중그늘 <연가>

★★★☆ 인디, 진정성, 간결함, 그리하여 대중성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밀려오듯 낮고 깊은 파고를 지녔다. 엄격히 수록곡들의 면면을 살피자면 자연스레 많은 음악가가 연상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그들의 명반 < Dreamtalk >(2012) 등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의 음악화. 즉, 가사를 통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어떤 순간을 곡으로 포착해냈던 공감각적 심상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 김일성이 죽던 해 >를 통해 자전적 스토리를 녹여낸 천용성, 파라솔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들려줬던 위트와 상상을 겸비한 노랫말. 사운드적으로는 신해경, 실리카겔이 선보인 몽환적 분위기가 음반의 전반을 감싼다.


기타 다양한 음악 동료들과의 교차점을 교류하지만 이 작품은 그 에센스를 끌어모아 지극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연가’는 ‘이 바람 속에 파란 싹은 뭘까 / 맞대진 사랑 속에 포근한 덩굴인가’라는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글로 문을 연다. 이어 레게리듬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보컬을 뿌리로 삼아 빳빳한 신시사이저를 밀어붙인다. 그룹의 작법은 이 세 개의 튼튼한 꼭짓점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와 비유에 푹 젖은 말들, 곡에 슬며시 빠져들게 하는 불순물 없는 보컬, 이 모든 요소의 색감을 한층 살리는 건반. 굳이 하나의 특징을 더 꼽자면 공중그늘의 합은 아주 훌륭하다. 각 악기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어우러지는 덕에 안개 같은 부유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노래가 쉽고 그래서 잘 와 닿는다.


‘공중그늘’은 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공중캠프’, ‘나무그늘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2016년 밴드를 결성, 2년 후인 2018년 첫 싱글 ‘파수꾼’을 발매했다. 이 세월과 같이 꾸린 추억은 그대로 그룹의 정수가 된다. 리드미컬한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타임머신’, ‘소꿉장난 같은 세상 속에서 / 내겐 돌아갈 곳이 없어’ 노래하는 ‘모래’, 장난스런 선율 사이 씁쓸함을 녹여낸 ‘비옷’ 등 대다수의 곡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노래 안으로 소환한다. 향수 어린 회고는 일면 지독한 독백이 되기 십상. 허나 이들은 그 개인성을 보편적 익숙함으로 돌려내며 보다듬을 전한다. 호소력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분명 밴드에게는 허술한 겉멋이나 허세가 없다.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선명한 인상을 남길 튼튼한 곡들이 가득 차 있다.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보이스 장필순이 보컬로 참여한 ‘연가 2’가 결코 앨범에서 튀지 않을 만큼 이 5명의 루키들은 완숙된 역량을 펼쳐낸다. 아스라이 묻어 나오는 그리움, 쓸쓸한 사랑, 텁텁한 순간들을 옅은 회색빛 어조로 노래하지만 그 편린이 싫지만은 않다. 밝고 강한 에너지가 아닌 조금은 어둡고 강한 이들의 노스텔지어. 서정적인 ‘연가’가 찬  바람 부는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음악적 환유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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