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에게 다가가기.
휘트니 휴스턴을 기억할 키워드는 많다. 1985년 데뷔 이후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 ‘I wanna dance with somebody’ 등의 숱한 히트곡을 배출한 뮤지션. 강하게 치고 나가는 파워풀한 보컬. 그리고 마약. 메이저 음악 씬에 진출한 직후부터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지만 그의 인생은 빠른 성공만큼이나 빠르게 꺼져버렸다. 때는 2012년. 향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휘트니 휴스턴. 영화 < 휘트니 >(2018)는 그런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회고한다. 공개된 적 없는 어린 시절의 사진들과 그를 추억하는 가족 및 지인들의 인터뷰가 화려함 이면에 묻은 어두움을 짙게 꺼내온다.
첫 주연작으로 열연한 영화 < 보디가드 >(1992)는 알지 못할지라도 작품 속 히트곡인 ‘I will always love you’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다. 컨트리 뮤지션 돌리 파튼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이 노래로 빌보드 싱글차트 14주 연속 1위를 거머쥐었다. 올 타임 리퀘스트로 사랑받는 곡으로 이즈음 그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흑인’, ‘여성’ 음악가로서 사회 정치적 목소리를 강하게 내뱉진 않았지만 그의 노래가 주는 힘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길 것이 못됐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몸소 익힌 가스펠의 흥취와 아레사 플랭클린의 백보컬로 활약하기도 한 어머니 씨씨 휴스턴의 엄격한 음악적 훈육이 휘트니의 기반을 다졌다. 또 하나. 가지고 태어난 역량과 욕심이 그의 성장에 가속도로 붙였다. 예고된 스타나 다름없었다.
영화는 ‘니피’란 애칭으로 불리던 작은 소녀가 세상을 호명하고 다시 세상에 의해 호명 당하는 과정을 좇는다. 흑인임에도 하얀 편에 속했던 피부 탓에 질타를 받거나 댄스 음악으로 우회했던 탓에 ‘화이티 휴스턴(백인의 음악을 하는 휴스턴)’이란 비판 아래 있었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반면, 배우자였던 바비 브라운의 가정 폭력과 그가 일으킨 각종 구설수로 인해 휘트니가 더욱 마약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과거 각종 찬사로 휘트니를 휘감던 매스컴이 망가져 가는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생중계했다. 실제로 극이 끝으로 향할수록 점점 더 피폐하게 변하는 휘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감춰진 맥락들이 존재한다. 휘트니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16살 때부터이다. 그가 자신을 괴롭히던 바비 브라운과 쉽사리 이혼하지 못했던 건 부모님의 이혼이 안겨준 상처 때문이었으며 투어 현장에 늘 어린 딸과 함께했던 건 그가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영화 말미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혼자 남겨진 집에서 그는 동성의 사촌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이렇듯 극은 그간 조명되지 못했던 휘트니의 내면에 다가간다. 뉴어크의 작은 마을에서 늘 사랑을 좇고 받으며 자란 그가 왜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지, 가족의 존재가 왜 휘트니에게 양날의 검처럼 자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뒷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약 복용을 부인하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결국 자신의 중독을 인정한다. 당신을 괴롭히는 악마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건 ‘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저는 안 아파요. 아픈 게 아니에요”
잔뜩 마른 몸과 갈라진 목소리 끝에 절절한 아픔이 흘러나온다. 1991년 슈퍼볼 하프 타임 쇼에서 휘트니가 선창한 미국 국가 즉, ‘The star spangled banner’는 지금도 회자될 명공연이다. 하지만 그 시절 휘트니는 이미 위태로운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를 돌아볼 때 건드려야 할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끌어와 응축한 작품은 반짝이는 그의 모습 너머 짙고 어두운 삶의 뒷면 역시 선명하게 그린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튀어 오를 듯 강한 휘트니의 목소리만을 기억하지만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이후 어쩌면 우리는 탁하고 메마른 그의 보이스칼라를 동시에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다시 지금의 휘트니 휴스턴을 말한다. 그의 상처를, 사랑을, 음악을 모두 경유한 끝에 만난 휘트니는 온전히 살아있다. 그가 배우고 불렀듯 가슴으로 노래한 그의 곡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