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내려준 비 덕분에
오전에 내놓았던 컵에
물이 가득 차 흘러넘쳤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의 섭리와
시간의 우연 때문인 것을
그 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지나가는 이가 물었다.
컵에 물이 왜 이리 찼느냐고
컵은 말했다.
이게 나 라며
원래 그랬노라며
과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 말에 속아
고개를 끄덕였다.
비 한 방울 없이 맑은 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모두가 안도하는 그 순간
단 하나,
컵은 메말라 가는 물을 보며
절규하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내가 아니라며
나는 물이 가득 찬 컵이라고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어느덧 잊은 채로
보여짐에 익숙해져 버린 컵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원래의 자기 모습은 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