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 이른둥이를 만나기까지
21년 5월, 나는 결혼을 했다.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도, 화려한 웨딩홀에서 입장을 하는 것도 그다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었다. 다른 여자들처럼 로망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결혼식 하기 싫단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만큼 결혼식은 귀찮은 일 투성이었다.
“그래도 식은 해야지”
내 결혼식은 나 좋은 것보다 부모님의 하객들, 그리고 내 결혼식을 기회삼아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친지들을 위해 진행했다는 것이 나의 정설이다.
그 귀찮은 드레스를 골랐고, 웨딩촬영을 했고, 다이어트를 하면서 끝까지 내가 바란 건 결혼식을 마친 뒤 정산 후 들어오는 수익금(?)과 제주도 신혼여행이었다.
싸이 흠뻑쇼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주말이 지난 평일 저녁, 회식을 하고 있었다. 평소 술 마시는 것을 즐겨라 하던 나는 그날도 동네 치킨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P대리, 임신한 거 아냐?”
요즘 당기는 음식이 너무 많다고 한 내 말에 50대 부장님이 말하셨다. 나는 그럴 리 없다 손사래 치며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에이 설마? 하지만 그 말은 잊혀졌고, 며칠이 더 지났다.
같은 주 금요일,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 동안 혼자 술상을 차리다 갑자기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두 줄이 임신인지, 한 줄이 임신인지조차도 몰라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포장지만 몇 번을 읽었다. 테스트기라곤 코로나 자가키트 해본 것이 전부였다. 이내 매직아이라고 불리는 그 현상이 눈에 보였다. 불량인가 싶어 두어 개를 더 꺼내 시도했다. 임신이 처음이라 이게 뭔가 싶었지만 그날 이후,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아기는 낳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에 반항심이 들어 딩크족을 선언했다. 확실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90퍼센트 반항하는 마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철도 없이.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걱정도 많이 들었다. 우리 둘의 벌이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널브러진 우리집 거실은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더 이상 회식도 자유롭게 갈 수 없을 것이었고, 내 삶보단 엄마의 삶이 먼저가 될 거란 사실에 머리가 아팠다.
의무적으로 병원에 가 초음파로 아기가 잘 자라는지 보았다. 첫 번째로는, 병원에서 내원해야 하는 날짜를 정해줘서였고 두 번째로는, 정기검진일엔 회사를 쉴 수 있어서였다.
점점 신기해졌다. '꼬물이'란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꼬물이가 커질수록 뱃속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점차 커졌다. MBTI가 Power 'J'인 나는 일찍부터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 아기 용품 리스트를 짰다. 하나둘씩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기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애지중지 모으던 적금도 해지했다. 남편과의 대화는 온통 뱃속 아기로만 이루어졌다. 그래도 속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기다렸다.
어떤 아기가 태어날까? 나를 닮을까? 남편을 닮을까? 키가 클까? 작을까? 여느 부모들이 하는 같은 생각과 걱정, 희망들을 가지고 임신기간을 보냈다.
임신을 하고도 살찌는 것이 싫었던 나는 입덧이 심한 것이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옷이 두꺼워져 산부인과에서 재는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졌고, 찬바람에 살이 아릴 때까지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병원에 갔다. 그즈음부터 혈압이 조금씩 높아짐을 느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했다.
30주, 집에서도 혈압을 기록해 가져오라던 산부인과에 근래에 집에서 잰 혈압 수치를 말하니 내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말에 바로 내과에 갔고, 혈압을 재니 수축기혈압이 200이 나왔다. 걸어와서 높게 나왔겠거니 했다. 내과의사 생각은 달랐는지 임산부가 복용할 수 있는 고혈압 약인 아달라트를 처방해주었다.
33주, 출산휴가 전 올해 연차를 끌어모아 쉬기 시작했다. 민원이 많은 회사에서 일하는 터라 배가 불러서도 민원인들과 마찰이 많았고, 그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미리 꾸려둔 '출산 전 해야 할 일 리스트'를 하나둘씩 체크해 나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남편과 저녁을 맛있게 먹고 월드콘을 하나 먹었는데 명치가 아파와 소파에 누운 채로 남편과 TV를 봤다.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괜찮아지지 않아 배를 잡고 구르며 2시간을 보내다 밤에도 아프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던 간호사 말이 생각나 바로 산부인과 분만실로 갔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수액을 놔주는 것뿐이고, 혹시 모르니 임신중독증 검사를 해보자 했다. 입원을 권유했으나 집에 가고 싶어 집으로 왔다. 그 후로 일주일동안 할 일이 많지만 하나도 하지 못했다. 몸도 아팠고, 움직이면 혈압이 더 높아질 것 같았다.
임신중독증, 일단은 고혈압과 단백뇨가 대표적인 증상이며, 높은 혈압때문에 태아에 영양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자궁 내 성장지연을 보여 주수에 비해 태아가 작다는 것이었다. 빠르게 진행되며 하루 아침에도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벽내 몇 시간을 검색한 결과, 임신중독증이 확실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이미 소변에선 거품도 왕창 발견되고 있었다.
34주 정기검진일, 산부인과에 방문하고 의사를 마주했다. 임신중독증이 심해 당장 전원을 하라고 했다. 오늘 출산해야 하냐고 묻는 친정엄마의 말에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새벽 내내 인터넷 서칭한 결과 내가 겪는 증상들이 임신중독증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진즉에 나는 전원 할 병원도 알아봐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다음날 전원을 했고, 전원한 병원에서는 아기가 이렇게 작은데 왜 몰랐냐는 말과 함께,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뇌 혈관이 지금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고위험산모실보다 더 긴박한 산모들이 입원한다던 분만실로 입원을 하러 들어가면서부터 눈물이 났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지 이때 알았다. 만화에서 처럼 눈물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리 호캉스 온 거 아니고, 아기 안전하게 지키려고 온 거잖아"
능숙하게 내 팔에 고무줄을 묶고 채혈을 준비하던 간호사가 말했다. 그 말이 믿음이 그렇게 간 건지, 아니면 수시로 내 상태를 체크하던 의료진의 모습에 믿음이 간 건지 점차 안정적 이어진 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리 혈압 낮추는 약을 먹고, 주사해도 혈압은 다시금 올랐고, 설상가상으로 진통까지 시작되었다. 응급제왕을 할 텐데 내진을 왜 계속하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새벽을 꼬박 새우고, 새벽 4시쯤 오른쪽 시야가 흐려졌다. 눈에 뭐가 끼인 것 같아 물수건을 부탁해 눈을 닦아봤는데도 꾸준히 뿌옇게 보였다. 그제야 시야가 흐려졌다고 말했다.
간호사를 볼 때마다 아기 언제 낳냐 물었고, 경과를 더 살펴야 한다는 대답만 듣다가 새벽 5시, 보호자를 호출하라고 한다. 첫 수술로 응급제왕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자느라 받지 않을까 봐 무서웠지만 남편 역시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기다렸는지 바로 전화를 받고 그 새벽 바로 달려왔다. 수술 준비가 되어가고, 남편이 왔다. 막상 수술시간이 다가오니 무섭긴 하지만 무덤덤했다. 언젠가는 낳을 아기, 조금 일찍 낳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달려온 남편을 내가 달랬다.
새우등으로 몸을 말아 등에 척추마취 주사를 맞고, 배에 칼이 드는 느낌이 들었고, 아기 울음소리 나자마자 수면마취를 해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남편이 옆에 있었고, 비몽사몽한 와중에 간호사들이 배를 사정없이 눌렀다. 아기는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인 NICU로 이동했다고 한다. 남편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내 몸이 일단 아팠고, 내가 괜찮을지 두려워, 사실 아기가 건강한 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안위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였고, 그런 이기적인 엄마는 2월 17일, 38일이나 먼저 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늦겨울, 봄이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