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생각도 없이 그 작은 알약을 먹어버렸을까
“이른둥이는 모유가 제일 좋대.”
임신중독증으로 출산직후 먹은 단유약이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별생각 없이 몸 상태를 생각해 단유약을 먹고 유축은 시도하지 말라던 담당 교수님의 의견으로 약을 처방받아 먹었고, 단유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별 일 아니라고. 요즘 분유 잘 나온다고. 다들 분유 먹이지 않냐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반대로 모유를 먹여야한다 말씀하시는 NICU 담당 교수님의 조언에 ‘속으로’ 반문을 제기했다. 왜 굳이 모유여야 하냐고.
4박 5일간의 산부인과 입원을 마친 후,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모유수유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머릿속엔 내내 모유대신 기증 모유를 먹고 있는 우리 아기가 생각이 났다. 퇴원 전날 남편에게 말했다. 모유수유를 하겠노라고. 몇 시간에 걸친 검색과 셀프 마사지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돼 전문가를 찾아가기로 했다. 모유수유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 방문했다. 쌩판 남에게 단번에 축 처진 가슴만을 보이는 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절박했다.
"단유약 언제 드셨다고 했죠?"
불길한 물음이었다. 사실 임신기간 내내 가슴이 부풀어 너무 아팠었는데 신기하게 출산당일 단유약을 먹고 나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결과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모유수유센터에 오기 전부터 알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온 거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먹을 수 있는 두 종류의 액체 중 한 종류를 단절시켜 버리는 그렇게 위험한 약인지도 모르고 생각도 없이 단유약을 먹어버린 무지한 나였다. 바보 같았다. 임신기간 내내 들락거리던 맘카페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안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분유 잘 나와요 요즘."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다는 상황과 요즘 분유 좋다는 그 한 묶음 같은 말을 한 번에 듣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다행히 참을 수 있었다. 가슴을 살펴보는 일이 끝나고, 비용이 얼마냐 묻는 내 말에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비용은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조리원으로 돌아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편이 나름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하지 말래, 안된대' 라며 펑펑 울었다. 이상하게 결혼하고 나서 서러운 일이 있을 때 남편 얼굴을 보거나 남편이 괜찮냐 물으면 눈물부터 난다.
모유수유센터 직원의 말을 듣고도 포기가 안된 나는 조리원에서 당장 유축기를 빌렸다. 아기한테 직접 젖을 물리는 것이 모유를 늘리는 일이라고 했지만 나에겐 그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정말 짜낸다는 말이 딱 맞았다. 권장 시간보다 더 많이 유축기를 들이댔다. 가슴 끝에 물기가 살짝 맺히니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3시간마다 유축기를 켰고, 그런 내가 처량해 또 울었다.
우리 아기는 NICU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직수(아기한테 직접 수유하는 것)를 하지 않아도 됐고, 아기를 데리고 와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지 않아도 됐다. 다른 산모들처럼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듣지도 않았다. 방 밖엔 나가지도 않았다. 손바닥만 한 방 안에서 동물처럼 먹고, 자고, 누워있다가 가끔 책을 읽었고, 3시간마다 유축하는 것이 일주일에 300만 원가량을 지불한 나의 일상이었다.
기껏해야 5ml, 10ml가 모였지만 나는 그 양이 정상적인 양인줄 알았고, 유축할 때마다 모유저장팩에 담긴 모유 사진을 찍어 남편과 엄마에게 보냈다. 남편은 "오! 이제 나오려나 봐! 그래도 무리하지 마", 엄마는 "그만해, P야. 포기할 줄 도 알아야지."라고 각각 대답을 해주었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유축을 포기하지 않았고, 조리원 퇴소 전날 유축기 대여를 신청했다. 그마저도 늦어 하루 만에 젖이 마를까 봐 급하게 당일배송되는 휴대용 유축기도 구입했다.
집에 와서도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아기는 아직 병원에 있었고, 나는 회복이 아직 덜 된 상태라 예전처럼 집안일을 열심히 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축뿐이었다. 3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내가 나를 희망고문하듯이 유축량은 점점 늘어 많을 땐 35ml를 살짝 넘기도 했다.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어디에서도 단유약을 먹고 말라버린 젖이 다시 도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내가 의외의 경우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유축을 했다.
3주가 조금 넘은 날, 그날도 3시간마다 한 번씩 유축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임신 기간 때처럼 가슴이 부풀고 아팠다는 것. 열감도 꽤나 심했다. 드디어 되려나 보다 싶어 온갖 희망에 사로잡은 마음이 생겼다. 동네에 새로 생긴 모유수유센터에 당장 예약해 달려갔다. 간호사로 근무했었다던 모유수유센터 직원은 한 달 동안 고생 많았겠다며 내 가슴을 살폈다.
"안될 거 같아요. 단유마사지받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던 희망이 사라져 버렸고, 모유수유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나는 대여했던 유축기를 연장하는 것 대신 반납했고, 유축용품들을 모두 버렸다.
아기는 NICU에 한 달간 입원 후 퇴원했고, 한 달 동안 애써 유축한 냉동 모유와 분유를 혼합하여 먹였다. 지금은 출산 후 6개월이 지났고, 분유와 이유식을 함께 먹이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그때 단유약을 먹지 않고 모유를 먹였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나는 모유수유였지만, 어떤 엄마는 태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어떤 엄마는 임신기간 중에 먹은 어떠한 영양제를, 어떤 엄마는 또 다른 어떤 것을 계속해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주지 못하는 것,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착하고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고 끝까지 미안해하는 사람. 엄마가 되어보니 우리 엄마의 마음이 어느 정도 들여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