뚠뚠한 시선-02

시선을 고치는 데 걸린 시간

by 이주동

노션의 해묵은 페이지를 뒤지다 3년 전 멈춰버린 11번째 글의 씨앗을 발견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한글이 예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예쁜 것임을 깨닫게 하고, 편견과 싸워야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결국 ‘나’답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뚠뚠한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글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 꾸준함이 정답이라기에, 그저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글을 쓰려 어거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찰나의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시작한 기록은 어느새 일이 되었고, 일이 되자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10편의 글을 끝으로 나의 발행 버튼은 멈췄다.



2.

수많은 온라인상의 글들을 읽고 흉내 냈다. 그럴듯한 형태를 따라 해보며 내 글의 조회수는 올랐을지 모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질감이 머물렀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감각.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을 쓰려고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다 보면, 무서운 의심이 또아리를 틀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 내용을 쓸까. 누군가 비웃지는 않을까. 내 글의 근거는 무엇인가.’ 나에 대한 불신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공포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나는 그대로 페이지를 닫고 조용히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렇게 3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나를 의심하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3.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대학원에 갔고, 논문을 썼으며,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맹목적으로 쏟아내던 글들에 ‘필요’를 채워 넣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시간이었다. 디자인의 본질을 파고들며 나는 디자이너의 진짜 역할을 다시 정의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껍데기를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편견에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계몽가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글로 디자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예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다시 처음의 그 문장이었다. 아름다움은 곧 ‘나다움’이라는 것. 타인의 서사를 흉내 내던 관성을 끊어내고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야 한다는 미션이 생기자, 멈췄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예전의 글이 정처 없는 방황이었다면, 지금의 글에는 나만의 렌즈를 통과한 분명한 이유가 담겨 있다.



4.

생각과 시선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생각은 찰나에 떠오르는 파편이지만,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3년 전의 나는 생각을 쏟아내려다 길을 잃었지만, 지금의 나는 차곡차곡 쌓인 시선을 기록하려 한다. 비웃음이 두려워 닫아두었던 그 페이지를 다시 연다.


나답게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나다운 시선을 갖는 것,
그것이 가장 치열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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