뚠뚠한 시선-03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

by 이주동

며칠 전, 구청 강당에서 치러진 창업 지원 사업 설명회에 앉아 있었다. 세 시간을 훌쩍 넘긴 릴레이 강연과 이어지는 상담 열기는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강연장 안에서는 담당자들이 자료를 넘기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었고, 객석에는 차가운 자본 시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모여든 사장님들의 눈빛이 유난히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막 ‘창업’이라는 시장에 한 발을 들인 초보의 눈에는, 그 풍경이 마치 다른 별세계처럼 보였다.


그동안 나는 사무실 안,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속 디자인 결과물을 바라보며 일해왔다. 디자이너로서 형태와 맥락을 고민했고, 대학원에서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의 정의에 집착하며 내가 믿는 바를 증명하려 애썼다. 지식의 탑을 하나씩 올리듯 나름의 세계를 성실하게 쌓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마주한 설명회장은 내가 발을 딛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유니버스였다. 비즈니스라는 이름 앞에서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꼈고, 이미 그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한 문장이 입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


‘열심히 산다’는 말은 흔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모습은 상투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그것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고, 다시 시도하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성공담보다 실패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얼굴들이었고, 그래서 더 진지한 눈빛들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위로나 체념의 의미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낀 ‘똑같음’은 그런 느슨한 말이 아니었다.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거나 같은 목표를 향해 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 업의 크기나 분야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몫의 무게를 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마주하자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세계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 작아졌다고 해서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중심이라고 착각할 수는 없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판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고, 그 판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다.


디자인도, 연구도, 창업도 그 자체로는 크거나 작지 않다. 다만 각자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붙잡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설명회장을 나오며 차가운 겨울 공기를 들이켰다. 자신감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야 내가 서 있는 땅의 높이를 조금 더 정확히 가늠하게 된 기분이다. 으쓱대기보다 고개를 숙여 내 발밑을 먼저 살피기로 했다. 세상은 넓고, 그 안에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체로 대단하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똑같이 간절하다는 뜻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뚠뚠한 시선-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