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지식을 전한다는 것
디자인 강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위안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지식을 전하며 ‘나도 이만큼 알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로 강의를 이용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 앞에 서는 일은 나에게 지식을 뽐내는 기술이 아니라 겸손해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몇 해 전,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모이는 독서문화센터에서 북디자인 수업을 진행할 때였다. 종이를 접고, 바늘로 구멍을 뚫어 직접 실로 꿰매는 전통 제본 방식을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용어를 쉽게 바꾼다고 노력했지만, 정작 입으로 이론 설명을 이어갈수록 아이들의 표정에서 서서히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 설명이 아이들의 세계에 온전히 닿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는 그 짧은 침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당혹감을 남겼다.
그때 깨달았다. 지식의 높이를 낮춘다고 생각했던 나의 노력이 여전히 나의 기준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는 데 급급해, 정작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놓치고 있었다. 고작 한 줌에 불과한 지식과 식견을 전하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남을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쉬운 단어를 골라 써도, 입으로만 설명되는 지식은 아이들에게 그저 지루한 소음일 뿐이었다. 내가 가진 전문성이라는 성벽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높고 딱딱한 담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실습이 시작된 직후였다. 아이들이 직접 바늘과 실을 쥐고 종이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기 시작하자, 사라졌던 생기가 다시 돌아왔다. 저학년 꼬마들부터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중학생들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한 땀 한 땀 책등을 이어가는 과정에 무섭도록 몰입했다. 좋아하는 음식,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의 일과를 써 내려가고 그것을 책의 형태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점차 밝아졌다.
디자인을, 아니 내가 가진 한 줌의 지식을 알려준다는 것은 입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삶과의 연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 순간이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지켜보던 선생님들이 “수업이 너무 좋았다”며 어른들을 대상으로도 꼭 한번 해달라고 건네주신 감사 인사는, 지식이 아닌 ‘함께 만드는 즐거움’을 나눈 것에 대한 다정한 응답이었다. 특히 다른 강의에서도 내가 전해준 기초를 바탕으로 나조차 생각지 못한 자신들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면, 나는 비로소 내가 아직 한참 부족함을 깨닫는다. ‘나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은 나를 다시 겸손한 배움의 위치로 내려놓는다.
가르치는 일을 통해 나는 비로소 교만함을 버리는 법을 배운다. 디자인의 본질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클라이언트의 시선에서 문제를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불편함을 내 것처럼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시선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이 디자인이 누구를 향해 있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하는 일이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듯, 디자인 또한 나의 취향을 강요하기보다 타인의 삶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3년 전 멈췄던 글을 다시 쓰며, 나는 여전히 부족한 내 한 줌의 지식이 누군가의 손끝에서 또 다른 씨앗이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오늘도 내가 선 자리를 다시 살핀다.
가르치는 일은 나의 성벽을 허무는 과정이며,
디자인은 그 허물어진 자리에서 타인의 삶과 연결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