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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Feb 15. 2018

컨택트 : 인간의 필연적 비극성까지 받아들이는 긍정성.



루이스의 무기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진짜 무기는 "찾아온 미래가 선물이 아니라 고통일 때 그것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설사 그것이 비극일지라도 말이다.

영화 <컨택트>는 언어학자 루이스가 외계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치밀하지 못한 서사


그들의 언어 헵타포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그들의 사고체계까지도 학습하게 된다. 문제는 헵타포드를 기반으로 한 외계인들의 사고체계가 선행성에 기반을 둔 인간들의 세계관과 다르다는 점이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루이스는 외계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미래가 남편이 떠나고 아이가 병에 걸리는 불행임에도, 미래를 직시하고 지구를 구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만약 루이스가 그것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익숙한 선행적 시공간을 고집했다면, 지구는 전쟁으로 물들고 타인들의 고통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SF 영화 속 대부분의 영웅 서사가 영웅의 긍정성을 통해 외부환경과 싸워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컨택트>가 보여주는 영웅 서사는 긍정성을 통해 부정(=자신의 부정한 미래)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딜레마와 싸우는 과정이다. 딜레마적 선택 그 자체가 가장 큰 적이 된 상황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부정한 미래까지도 수용하는 긍정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긍정의 부정화'라는 고도화된 플롯 라인을 통해 감독 드니 빌뇌브는 지구전쟁을 막는 단편적인 영웅 서사에서 다 나아가, 주인공의 내면, 인간의 운명성, 회문의 서사까지도 품는 영리한 SF영화를 만들어 낸다.



기존 SF 영화 장르 문법을 뒤집는 이러한 감독의 영리함은 영화를 뜯어보고 그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때 더욱 빛난다. 하지만 영화 플롯이 너무 다층화되어, 기존 SF 문법을 바랬던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영화 내러티브 상 두 부분에서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로 영화 처음 가장 큰 목적이었던, 즉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알고 싶어 했던 "왜 외계인이 지구에 왔냐"라는 물음은 '30년 뒤 지구인들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라는 뜬구름같은 대답으로 대체된다. 또한, 영화 내러티브 상 가장 고도화되어야 할 루이스가 중국의 장군을 설득하는 서사 역시 치밀한 인과관계나 배경 없이 중국어 전화 한 통화로 뭉개진다.



평단과 대중의 엇갈림

이렇듯 기본적인 영화 내러티브 상 가장 긴박하고 치밀하게 해결되어야 할 두 부분이 유치한 방법으로 흘러가자,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영화를 해석하기 좋아하는 평론가의 환호와 영화를 즐기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실망이다.

만약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주 테마가 앞서 말한 SF 영웅 서사가 아니라 주인공 루이스 개인 서사와 인류의 소통 문제였다면? SF 장르는 단순히 소재로 이용된 장치임에 불과하고 일정 정도 장르 문법을 기대하고 왔던 관객들의 실망은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불친절한 감독 태도는 영화가 가진 큰 가치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의 비판과 실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미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를 통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또다시 아카데미를 밟게 되었다. 전작과는 다르게 여러 부분에 노미네이트된 신작 <컨택트>이기에 한 개 이상의 분야에서 수상이 충분히 예상된다. 대중을 실망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가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통과 시간 그리고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매끈하고 세련되게 말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이는 단순히 영화적 재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진짜 무기는 한없이 작은 우리 인간 존재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감추지 않고 긍정적으로 솔직하게 드러낸 감독의 용기다. 영화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감독의 이러한 시선은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언제나 묵직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현대적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행복한 사진과 일상을 강요받는 현대의 소통공간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적 비극성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드니 빌뇌브는 그의 영화를 통해 이러한 감정은 본연적이라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을린 사랑>에서 <컨택트>까지 드니 빌뇌브는 또한 일관되게 인간운명의 부정성까지도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서도 말한다. 설사 그것이 근친상간의 아픔, 가족붕괴의 비극일지라도 말이다. 비극 속에서도 겸허하게 우리 운명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우리 인간의 진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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