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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Jul 05. 2018

<변산> 촌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정서


쇼미더 머니에서 6번이나 떨어진 래퍼 학수는 여전히 무대 위의 자신을 꿈꾼다. 영화는 경연 무대에서 착실히 사다리를 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질 것 같지만, 또다시 가사를 절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학수의 모습을 비춘다. 승자독식의 오디션 무대가 사라지자 학수에게는 온전히 랩만 남는다. 세련된 힙힙문화가 그려질 것 같은 영화 소재지만, 주인공 랩퍼 학수는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다. 화려한 라임과 재치있는 펀치라인 등 힙합하면 세련됨을 먼저 떠올리지만, 되려 젊은이들은 그것에 담긴 솔직한 가사에 열광한다. 8마디에 꾹꾹 눌러담은 언어를 통해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서사'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홍대와 변산의 거리만큼이나 힙합의 이미지와 속의 가사는 괴리가 있다. 학수는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간 회피했던 과거와 마주하기 위해 학수는 자신의 고향 변산으로 향한다.

 


<변산>은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 마침표다. <동주>와 <박열>을 통해 역사 속 청춘을 재조명했다면, 변산은 동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동주>가 암울한 시대에 찬란히 빛났지만 결국 완성되지 못한 청춘을, 박열이 잘못된 사회에 굴복하지 않은 뜨거운 청춘을 그렸다면, <변산>의 이야기는 현실과 과거의 괴리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개인사를 그린다. 시골깡패로 살아가며 죽을 때가 되서야 찾아온 아버지, 어린시절 오랫동안 괴롭혔던 친구와의 재회, 자신을 짝사랑하던 이성친구와의 조우. 가난해서 줄 수 있는 것이 '노을'뿐인 고향은 성인이 된 학수의 발목을 어전히 계속 잡는다. 전작에 비해 영화의 서사는 협소해 졌지만, 그렇다고 사회의식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동시대의 젊은이들의 무엇과 싸우고, 고뇌하고, 그 간극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윤동주가 그것을 시에 담아냈다면, 학수는 랩에 같은 것을 담아낼 뿐이다. 꿈과 성공이란 이름으로 방송이란 투견장에 몰린 청춘들. 알바와 고시원의 삶이 어느순간부터 당연해진 헬조선의 삶. 꿈을 볼모로 잡혀 서로간 경쟁시키는 잔혹한 어른들의 시스템에서, 1등으로 호명되지 못한 수많은 청춘들의 삶을 영화는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어둡지 않다. <동주>와 <박열>이 보여주는 어두운 시대 분위기와는 달리, 이번 <변산>은 좌충우돌의 캐릭터와 희극적 요소를 통해 밝은 분위기로 일관한다. 청춘들의 삶에 간섭하고 일갈하는 꼰대들의 이미지들 또한 보이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만년 탈락자이지만 학수는 아버지 세대와 맞써 싸운다.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학수에게 아버지 역시 지난 세대의 삶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성공을 독려한다. 부끄러운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고 그곳에서 다시 성장하는 실패한 음악인. 주인공의 나이만 다를뿐 <변산>은 이준익 감독의 전작 <라디오 스타>와 닮아있다. 최곤(박중훈) 곁에 매니저 안성기가 있었다면, 학수 곁에는 김고은이 존재하며 어려운 고비마다 그의 성장을 도운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인생에 피해주며 상처받고 갈등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족 같다. '변산'이란 이름에 묶여 가족, 친구, 연인이란 이름으로 촌스러운 설정이지만, 영화 <변산>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정서가 흐른다. 감독 이준익은 언제나 이 '공동체 정서'를 갈망한다.



홍대에서 멀리 떨어져 변산에 내려간 이후, 아이러니하게 학수의 랩은 성장한다. 매듭지지 못한 과거의 페이지를 한장 한장 정리할때마다, 그는 진정성 있는 가사를 적어 내려간다. 자신의 고향은 가난해서 줄수 있는 것이 노을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학수는 그 노을에서 어둠이 아닌 새로운 아침을 바라본다.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변산의 붉은 노을을 떠나 학수는 다시 무대 위의 붉은 조명 아래 선다. 날선 가사와 분노 대신, 숨기고 싶었던 촌티나는 고향의 애증을,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 읊는다.


도무지 도려낼 수 없었던 도리어 선명한 기억 / 갖지 못했던 걸 잃고 되려 갚지 못한 걸 후회해 / 닮아 있지 아니 닮고 싶지도 않던 존재가 부재가 / 되며 남긴 말이 내 무제 인생의 부제가 되네 / 꼬마는 무덤가에 앉아 과거에 콤마를 찍은 다음 / 당신의 유언을 핑계삼아 새로운 문장을 적어내려가/ 잘 사는 것이 복수여? 그려 보란듯이 떵떵대며/ 평생을 복수로 텅텅 비어 내 남은 노트를 채워가...


붉은빛의 고향을 떠나 보낸 붉은 조명 아래 시간/ 묽은 향수는 한 순간 흩어지는 굵은 한숨으로 사라져 / 그래도 향수병은 그대로 남아 끝내 지워지지 않아 저기 / 해가 지는 동네 바람부는 곳 내 아버지가 사는 빛과 어둠의 경계 / 애써 등져야만 했던 그와 그곳이 건넨 금목걸이 그 / 마른 화해의 인사 등돌린 시간이 미안해서/ 묵묵하게 적어 내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비워둔 그 다음 행을…

                                                                                                                                <박정민 / 변산ost 노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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