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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Mar 16. 2022

사실 한국 어딘가에선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

<K대_OO닮음_93년생.avi>, 강력 추천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주위에 CCTV가 있다고 치자. 난 진짜 그게 누구보다 싫을 것 같다.  강박증이 큰 이유다. 강박증의 뜻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생각의 꼬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기계가 폭발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하루종일 하고있다면 강박증이 심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난 그랬던 시기를 많이 지나가긴 했지만 가끔 진짜 쓰잘데기 없는 생각, 그러니까 '어제 먹은 무엇'과 같은 잡념을 하느라 잠을 못 이룬적도 많다.     


그래서 난 자세를 고치기가 힘들다. 자세를 고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이것을 되뇌이면 된다. 난 거북목이 심하다. 집돌이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에 이럴 것이다. 나는 이 거북목 자세가 2년 전부터 엄청 심했다. 의식해서 똑바로 걸을려고 해도 강박증이 주는 잡념 때문에 남들보다 개선이 어려웠다. 아무튼. 이런 나 자신에게 좋은 해결방안이 되어준 건 사진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서 있는 자세를 옆에서 찍어서 사진으로 보여줬다. 헉. 나 이렇게 서서 다니는구나. 얼굴이 빨개졌다. 강박증 때문에 이래! 라고 정신승리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습은 내가 정말 싫어하게 될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득 한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들어왔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었다. 이거 미안한데. 사진 지워주면 안 돼? 아. 미안. 근데 나는 항상 말해주고 싶었어. 이게 되게 소심한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난 원래부터 소심한 인간이라 그런 말을 듣는 것이 큰 이상은 없을테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굽은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이 때 느꼈던 불편함이 다른 쪽으로 전염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 알았다. 내 모습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불편한 일이라는걸.         



지금 한국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K대_OO닮음_93년생.avi>는 기록에 관한 영화다. 다른 말로 하면, 리벤지 포르노에 관한 작품이다. 주인공 혜원은 전 남자친구가 유출한 리벤지포르노로 인해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남자를 고소했고 이에 따라 피의자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나서 지하철로 이동하는 혜원. 전 남자친구가 꽃다발을 준비한 채로 자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혜원은 남자의 변명을 듣는다. 나는 이런 입장에 놓여본적도 없는데 내가 다 화가 난다. 내가 퍼질줄 알았냐? 이 XXX아. 나 진짜 니가 안 도와주면 자살해야 한다고. 나도 학교 그만 뒀다고. 전남친은 마치 맡겨둔 돈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신고 있던 구두굽으로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겠지만 이 이후의 상황을 제시해주진 않는다. 터덜터덜 걷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온 혜원. 유출된 동영상을 돌려보고 있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지우려는데 몸에 난 점 세개를 면도칼로 지우고자 한다. 일하는 곳이 생기고 어떤 걸 하든 웃을 수 없는 현실에 혜원은 점점 어두워진다. 마지막 화장실에도 설마 나를 촬영하고 있는것이 있을까 싶어 혹시나 싶었고 이 예상이 적중하며 영화는 끝난다.     

많은 트라우마를 관통할 수도 있을 법한 영화     


단편영화다. 26분이면 끝나는 작품이다. 트라우마를 묘사하는데, 과연 26분이 최선이었을까? 물론 감독에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분량조절에 있어 좀 더 길게 만들어 이런 피해자들이 겪을 수 있는 애환을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분량의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에 트라우마가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빼먹지는 않았다. 영화는 나름대로 꼼꼼한 부분이 있다.     


첫번째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행동들이 보였다내가 보기엔 혜원은 강박증이 있다. 강박증과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랑 상관 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게 된다. 혜원이 집으로 돌아와 영상을 보는 장면이 있다. 심각한 일이 아니고 단순한 부정적 에피소드를 겪은 사람들은 보통 얼른 잊어버리려 할 것이다. 그런데 혜원은 영상을 다시 확인한다. 강박증의 특성상 무언가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냥 단지 계속 생각나서다. 이 생각이 반복되는 경우는 보통 후회와 연관되어 있다. 자기의 어느 정보가 포함되어있는 영상이 유출됨으로서 '이 영상만 아니었다면 난 주변인들이 뭔 이상한 음담패설을 해도 쿨하게 sjar넘길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하거나 주변인들의 뒷담화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이다. 심각한 일을 겪은 상처가 그녀를 계속해서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혜원은 이 트라우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겪을 때마다 이 일을 기억할 것이고, 이 생각이 반복되면 그게 강박장애나 불안장애로 이어진다. 널리 알려진 대로 거의 대부분의 탈의실에는 CCTV가 없다. 또 실제로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불법이지만 혜원이 이에 대해 의식하는 장면도 강박장애의 전조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있다. 혜원이 가게의 그릇을 깨트리는 장면이 있는데이것도 강박증에 대한 섬세한 묘사라고 생각한다강박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딴 생각을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다. 본인의 의사랑 상관 없이 다른 사람의 70~80%의 집중력만 보여준다. 혜원의 무의식에는 이 생각이 자리잡은게 아닐까.이렇게 영화는 그녀의 단적인 행동만으로도 트라우마에 대한 묘사를 만들어낸다. 리벤지포르노가 피해자의 삶에 어떤 악영향이 끼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한 강점이다. 이런 강점은 하나 더 있다.     


두번째인물의 설정이다난 혜원의 몸에 난 점 세 개와 나이 26대학교 자퇴라는 세 설정이 탁월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보통의 여대생들이 휴학 없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24살이다. 그런데 혜원은 26살에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다. 몇 년간은 방황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디테일은 아마 대학에 졸업한지 얼마 안됐거나 현역 대학생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다. 또 혜원은 사회생활 하는데 있어 일에 서투른 모습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강박증이 원인 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좋은 일이 있고 나서 몇 년간은 은둔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앞부분에 제시되는 '대학교 자퇴'라는 설정만 봐도 사람이 두려웠기 때문에 상처가 컸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인물의 자퇴는 다른 내용을 품고 있기도 하다. 내 경험상 내가 트라우마에 고통받을 때 주변인에 대해 의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큰 상처를 남긴 에피소드고, 이에 대해 나를 조롱할거라는 피해의식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 일반사람들의 시선과 자아존중감의 붕괴로 인해 상처를 가진 이는 점점 혼자가 된다. 이를 계기로 다른 사람들이 겪는 사회생활의 경험을 쌓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감독은 이런 부분을 내포하는 각본으로 트라우마를 가진 이에게 무게감 있게 다가갔다.   

 

그치만 난 엔딩부가 살짝 과했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다 좋다가 마지막이 좀 과했다. 물론 카페에서 자기 친구들이랑 공개된 곳에서 음담패설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런 성희롱을 들음과 동시에 리벤지포르노의 희생양이며 화장실 몰카의 피해자가 될 뻔했다는 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말만 해도 되는데 +A가 붙어 의미가 살짝 변색될 수도 있다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없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몰카 범죄가 정말 드문가? 100의 확률로 봤을 때 비중이 작을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을 겪은 사람들에겐 이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가능성이 낮던 높던 이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이 트라우마는 굉장히 긴 시간동안 세상에게 의심을 갖게 만든다리벤지포르노가 드문가? 역시 마찬가지로 100의 확률 선에선 적겠지만 현실에서 아예 마주칠 일 없는 범죄는 아니다. 영화가 이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본래 아이디어가 됐던 '왜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반응하는가'라는 것을 명백하게 살릴 수 있다면 나는 굉장히 성공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또 다른 근거로 영화가 '어떤 집단 전부가 문제인가'라고 일반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범인이 얼마나 정신이 이상한 인간이고 이 사람이 속해있는 집단 전체가 이렇다라는 식으로 영화가 전개됐다면 메세지가 깔끔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영화가 이것을 분명하게 지양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전하는 감사함 


아무튼 나도 트라우마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감사하다는 말이다. 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부담스러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대받아야 할 삶이란 없다. 특히 그 하대받는 이유가 누군가와의 연애라면 특히 더 그렇다. 리벤지포르노의 피해자들은 혜원처럼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심적인 고통이나 트라우마가 그 사람의 삶을 평생 관통하기 때문에 함부로 위로조차 할 수 없단거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강인한 분들이며 세상에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걸 전하고 싶다. 세상이 무너져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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