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와일드 : 야수들의 전쟁> 스포일러 없는 리뷰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복싱 시합에서 시작한다. 어수선한 복싱장. 옆에 조폭들이 몇 앉아있다. 그 조폭 중에서 주인공 우철(박성웅)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식(오대환)이다. 파이팅! 우철에게 응원을 보내는 도식. 도식과 우철은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다. 휴식시간이 마무리되고 다시 시합이 재개된다. 우철은 상대방에게 몇 대 얻어맞는다. 맞고 있을 수는 없다. 반격하는 우철. 상대는 우철에게 몇 방 맞고 쓰러졌다. 상대가 기절한 탓에 시합의 승부가 가려졌다. 승자가 된 우철. 하지만 금세 패자가 된다. 복싱 시합 상대가 사망한 것이다. 과실치사 혐의로 8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우철. 우철이 감옥에서 출소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박성웅의 연기력이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두 가지다. 범죄물로서 각 세력들의 갈등이 유발하는 장르적인 재미와 명주와 우철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박성웅 배우는 범죄물에 다수 출연한 경험을 십분 활용하듯 두 장르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도식과 명주를 만날 때 이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다르다. 도식에게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 알았다 ‘ 식의 대답이 주가 된다. 명주에게는 대체로 쩔쩔매다 감정을 표현할 때는 평소보다 더 강하게 연기한다. 이 사람이 사랑에 서툴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을 표현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 우철 캐릭터가 아닌 선에서, 나머지 인물들은 ‘가오 잡기‘ 바쁜 사람들뿐이다. 대표적으로 우철의 친구 도식은 못하는 것이 없다. 이 모든 일을 도식 혼자 전부 해결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느냐? 는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영화에서 이 인물은 일만 하거나 화만 내지 별 서사가 없다. 이렇게 빈약한 캐릭터 설정 탓에 오대환 배우의 연기를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욕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도식의 부하 역할인 한태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인물의 감정선이 명확하게 드러날 만큼 캐릭터의 서사가 정돈되지 않았다. 이는 이 영화가 도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와도 일맥상통하는데, 한태 역시 우철에게 대드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 배우의 연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센 척뿐이다. 주인공과 그에 버금가는 조연인 둘의 연기가 이런데 나머지 단역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영양가는 없는 몇 마디만 하다가 퇴장한다.
이 영화가 가진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캐릭터들의 서사다. 이 영화는 수많은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우철/도식)이 8년 전에 겪었던 복싱 시합 사건, 명주(서지혜)의 여러 문제들, 출소 후 우철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 도식이 조직을 운영하며 마주하는 몇 애로사항 등이다. 영화는 이 벌려놓은 수많은 문제들을 정면으로 해결하는 척 하지만 제대로 결말을 내지 못한다. 우선 복싱 사건은 후반부에 반전이 펼쳐지나 두 주인공의 리액션이 미진하다. 심각한 문제임에도 두 사람은 심적인 변화가 없다. '출소한 우철의 사회 적응 문제'에 대해서는 이 인물이 극 중 첫 장면과 후반부의 모습이 아예 모순됐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실 살다 보면 우리 일상 속에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 것을 전제로 깔고 싶었다면 '마음이 왜 바뀌는지'에 대한 묘사가 필요했다. 명주와 관련된 서사에서도 빈약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 후반부에 이야기의 굴곡을 만드는 단역이 등장한다. 이 단역이 내포하는 사건은 거대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건 역시 영화의 엔딩과 조응하지 못한다. 그럼 왜 이 인물이 필요했을까? 단지 명주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끌고 가기 위해 캐릭터를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큰 단점처럼 느껴지는 것은 경찰인 정곤(주석태)이다. 사실 경찰이 악역을 맡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다. 공직자들의 삶에는 감찰이라는 것이 있다. 정곤이라는 인물이 '~장'도 아니고 이 모든 범죄와 비리들을 벌이고도 아무 견제도 들어오지 않는 것은 핍진성의 문제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지점이다(심지어 서장, 총장들도 이렇게 저지른 범죄가 많으면 오래 안 가 들킬 것 같다). 이 인물이 가진 문제가 영화에 끼치는 악영향은 크다. 정곤이 도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인공 중 한 명(도식)에게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데 두 사람의 서사가 곧바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각본이 불친절한 이유 중 하나는 동어반복이다. 이 영화에서 "일 하나 하자"라는 문장은 수시로 등장한다. 보통 이런 류의 대사에서 '이 일'은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우철이고, 이야기도 그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우철이 받거나 제의하는 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명주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이 일 하나 하자'라는 말을 내뱉고 있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가 하나의 일이나 인물로 재편되는 구성이 아니라 각자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일들만 어찌어찌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하나로 달라붙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기-승-전-결의 형태가 아닌 기-승-전-결의 1부 / 기-승-전-결의 2부 / 기-승-전-결의 3부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이 영화가 장황하게 들린다. 우철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영화의 편집이 묘하게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둘째로 치고, 가장 먼저 이 인물들이 치는 대사가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베테랑인 오대환, 오달수, 박성웅 배우는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나머지 배역들이 치는 대사는 또렷하지 못하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영화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편집과 촬영에서도 이와 유사한 단점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 우철의 복싱 시합, 우철이 명주에게 소리 지르는 장면, 우철의 분향소 장면 등 세심하지 못한 장면 연출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