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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Dec 10. 2023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두 단어 '로맨틱'과 '코미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포일러 없는 리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받은 시사회 초대장에 근거해 작성했습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지루한 일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핀란드 어느 곳에 사는 평범한 여성 안사다. 매일같이 일만 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안사.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노숙인들에게 폐기해야 할 샌드위치를 줬고, 관리자가 이를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다. 쓸쓸한 안사. 이미 지친 안사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아는 언니와 펍으로 향한다.


 영화의 시점이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남자 홀라파는 공장 여기저기를 다니는 노동자다.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홀라파.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형이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여자 만나러 펍에 갈래? 노래도 부르고 하는 거지.” “상남자는 노래 안 합니다.” 일단 튕기고 보는 홀라파. 하지만 자연스레 홀라파는 펍에 도착했다. 일행이었던 형이 어떤 여자에게 작업 거는 걸 옆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동시에 홀라파의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사를 보고 반한 홀라파. 두 사람의 사랑이 낙엽을 타기 시작한다!


로맨틱하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단어는 ‘낭만’이다. 이 영화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낭만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가 상정한 낭만은 사랑의 힘이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기본적인 설정부터 평범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의 모든 미덕이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재벌 3세쯤 됐다면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돈이 많았으면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인맥이 좁아서 서로 다 알았을 것 같다. 또 그만큼 인물이 고를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플롯에서 이것들을 다뤄야 할 당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노동자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끔 이야기를 설정한다. 그런데 또 생략하고 싶은 것들은 아예 빼버렸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없다. 뉴스를 들을 때 어떻게 들을까? 라디오다. 심지어 두 주인공은 마블 영화같이 CG가 많이 들어간 작품들 안 본다. 짐 자무쉬 영화 본다. 이런 것들은 감독이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고 가는 온정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통일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가 '영화'라는 예술을 사용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영화의 의미를 현실을 잊고 아름다운 세상에 잠시 도피하는 탈출구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짐 자무쉬의 이 영화를 틀고 나서 어떤 인물이 내보이는 반응이 그 근거다. 좀비와 누벨바그 거장은 멀리 떨어져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인물은 나름대로 영화를 즐겼을 것이다. 단지 누구보다 잘 즐기는 방식 중 하나로 허세 부리기를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감상을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것도 예술이 있는 이유다. 작품을 통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예술의 이 단면을 포착해서 이야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예술이 가진 온기를 직접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다른 특이한 점은 시간적 배경이다. 사실 어떤 관객들은 2024년이라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가 명시하는 구체적인 시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이야기 안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목적 중 하나는 지친 현실을 겪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가?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현실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세태의 관객들에게 이 라디오 뉴스는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이 되기 충분하다. 영화가 두 가치를 대조하기 위해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시간적 배경과 인물들의 리액션을 우화처럼 읽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거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내 사랑스러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를 시/청각적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시각적인 측면이다. 이 영화는 빛이 바랜 것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낙엽이라는 소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해도 무방하다. 보통 낙엽이 진다는 건 가을에서 겨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시기의 끝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낙엽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담배꽁초 역시 마찬가지다. 담배꽁초도 누가 다 쓴 것이라는 점에서 소멸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야기에서 들어간 방식은 정반대다. 이런 사소한 의미부여가 별 것 아닌 거 같아 보이지만 영화의 낭만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수적이다. 감독이 자그마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미장센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영화는 강박적으로 대칭을 고수하고 있다. 색감을 활용하는 방식도 동화 같다. 이런 연출법을 고수한 이유는 관객을 몰입시킴과 동시에 동화 같은 분위기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화면이 나타나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가 인위적으로 조형됐다는 걸 강조하면서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이는 게 최선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목적으로 강박적인 미장센을 고수하고 있다. 부드러운 색감, 안정적인 대칭 등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장면 연출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글쓴이는 특히 시각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더 강조하고 싶다. 강아지와 대화하는 장면, 홀라파와 안사가 데이트하는 장면 등 별 것 아닌 거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감독의 센스가 돋보였다.


이 영화의 톤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삽입곡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어떻게 보면 고전 멜로 영화에서 봤던 연기가 이 작품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이는 이 영화의 코미디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뚱한 표정과 뭔가 뚝딱거리는 동선으로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물들은 시종일관 내내 말장난을 하며 관객을 웃기려고 한다. 이 둘이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것에서 풍기는 매력이 영화의 원동력이 된다. 아, 이 영화의 번역가분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셨다. 올해의 번역상 드린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삽입곡들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삽입하며 고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장면에선 가사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단편소설 하나 본 듯


이 영화의 단점은 딱히 없다. 굳이 뽑자면 이야기 전개다. 상대적으로 잔잔하기도 하고 우연에 의존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전개가 영화 보는데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원래 감독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에겐 목적이란 게 있지 않나. 이 영화는 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감독이 여러 요소들을 끌여들였다. 하지만 탄탄한 연출력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들이 한 가지의 맥락에서 빛을 발하면서 좋은 우화를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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