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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Feb 19. 2024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고 나 자신도 솔직히 잘 모르고

<메이 디셈버> 스포일러 없는 리뷰


서서히 균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국적의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이다. 엘리자베스는 누군가에게 향하고 있다. 이동 중인 엘리자베스. 카메라는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언 무어)와 조(찰스 멜튼)에게로 향한다. 둘은 부부다. 엘리자베스는 이 그레이시, 조 부부를 취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살고 있던 곳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왜? 엘리자베스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그 시나리오에서 나온 대로라면 엘리자베스가 맡게 된 배역이 그레이시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기자처럼 다가온 그레이시. 그레이시의 질문과 시선이 점점 충돌하기 시작한다.


원형 구조?


이 영화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작품 그 자체를 형상화했다. 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모티브가 무엇일까? 작중에서 자주 반복되는 대사인데, ‘나를 이해할 수 있어?’라는 말이다(이 문장은 시놉시스에도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이 질문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촬영 구도를 반복한다. 가령 우리가 가장 쉽게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포스터를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두 사람(그레이시/엘리자베스)의 얼굴을 가로로 연이어 배치하는 장면이 몇 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촬영으로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비단 촬영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몇 요소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는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흉내 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배우’라는 소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이 영화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반복해서 답을 내놓는다. 반복되는 상황, 소품, 이야기 흐름까지 이 세상을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다. 이는 영화 팬들이라면 알고 있을 <벨벳 골드마인>에서의 변태적인 미장센과 공통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벨벳 골드마인>과 유사하게 <메이 디셈버>는 거의 모든 소재에 대칭이라는 키워드를 배치시켰는데 이 부분 역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던지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모든 디테일이 핵심을 향한다는 것이 공통점이 된 것이다. 심지어 영화가 게으르지도 않다. 이 밀도를 다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데,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 뿐만아니라 조나 엘리자베스, 그레이시와 조, 그리고 세 인물과 그 나머지까지 인물들은 서로 사회를 이루며 영화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인물들 간의 연결관계와 공통점을 묘사하는 이유는 영화가 내리는 결론과도 닿아있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 것을 숨기는 방식 역시 신선한데, 이는 토드 헤인즈가 그동안 시도해 온 파격적인 이야기 형식의 연장선상 같아 보이니 등장인물 중 유달리 도드라지는 한 캐릭터에 주의집중하시길 바란다. 또 우리가 수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사랑의 이기적인 속성도 활용하는데, 역시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다.


틈입하는 사운드


이 영화를 보면서 먼저 귀에 들어왔던 건 사운드다. 이 영화는 음향효과를 특별하게 사용했다. 어떻게? 바로 이 영화의 플롯을 음향으로 청각화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 번째 장면에선가 어떤 여자애가 냅다 소리 지르는 부분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영화를 보다 보면 ‘우연히 갑자기 어떤 소리가 끼어드는’ 장면을 몇 개 찾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아무 맥락도 없이 공통점을 보며 그냥 들어가지 않았겠지? 이 음향 효과들은 다른 영화의 사운드들이 잘 짜여 있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다. 핵심은 ‘다른 영화의 사운드가 잘 짜여 있다’는 점인데, 이는 사실 영화에서 누군가와 누군가의 관계로 치환되고 있다. 주인공 간의 관계에 비명소리 같은 것이 틈입하는 것이다. 이 양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보면 영화가 조금은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 같다.


영화가 사운드를 활용한 다른 방식은 인물의 정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불안한 요소가 무엇인지 쓸 수 있지만 이야기 내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쓰긴 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하게 언급할 수 있는 건 ‘사운드’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바로 그레이시가 “소시지가 다 떨어졌구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소시지가 다 떨어졌다는 게 이야기 흐름 상 중요한 장면이 되진 아니겠지? 하지만 이 장면에 밑줄이 쫙 그 여진 이유는 연출하는 방식에 있다. 이 음향은 왠지 모르게 불안정한 인물들의 분위기, 인간관계, 그리고 플롯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글쓴이는 청각적 요소를 이렇게 활용해서 불안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과 청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불안함을 만들어내고, 그 도착지에 무엇이 있는지를 염두하고 본다면 영화가 좀 더 쉬울 것이다.


다층적인 이야기


이 영화의 두 주인공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는 여성이다. 이를 이 영화가 여성영화로서 읽히는 지점이 몇 있다. 이 영화가 인물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팜므파탈’ 같은 것이 뒤틀렸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감독의 전작 <캐럴>에서도 느낄 수 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이 영화가 핵심을 인물로 또 플롯으로 소화한 것과 유사하게 표현한 부분도 있다. 바로 이 영화의 플롯을 형상화한 형태 중 ‘원’이라는 것이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장면에서 영화 내적인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 여성영화로서의 맥락으로도 작동하니 영화가 영리한 선택을 뒀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대사가 몇 있으니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역시 촘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를 예술가의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예술가와 세상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다룬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은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다. 하지만 어떤 예술은 기자가 구사하는 저널리즘으로, 또 다른 현실은 마치 연극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현실과 예술을 병치시켜 엔딩에 이르면 이 영화가 정말 넘고 싶어했던 것이 무엇일까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런 소재들도 과연 거장이다 싶었지만 오히려 단점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다층적인 이야기를 구성함에 따라 인물들이 엄청나게 생동감이 있는 타입들은 또 아니었던 듯 하다. 서서히 스며드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줄리언 무어의 맹위, 종잡을 수 없는 찰스 멜튼이 굉장했어서 그렇지 영화가 다이나믹한 템포로 빠르게 달리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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