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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Aug 20. 2021

나를 갉아먹는 면접

회사에 불합격 통보하기

 평가를 받는 상황은 나를 예민한 코너로 몰아세운다. 인턴을   깨달았다. PD같은 제작 직군은 공채 전형이 유독  편인데, 자기소개서, 인적성, 작문, 논술, 수차례의 면접을  3개월 동안 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6, 길게는 8 간의 인턴쉽이 주어진다.  기간 내내 공공연한 평가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인사, 발걸음, 눈빛  작은  하나에도 항상 긴장을 해야 했다. 이런 스트레스 과부하 상황에 놓이면 쉽게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예민함을 능숙하게 감추는 역량 역시 평가의 중요한 지표가 됐다.


 그때의 나는 합격보다도 인턴쉽이 끝났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내게 인턴쉽은 부당함을 능숙하게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을(乙)의 위치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인고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턴쉽이 이렇진 않겠지…?) 일상에서도 평가는 흔히 이뤄지지만, 적어도 취업 준비를 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취업을 한 후로는 그와 같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그나마의 안전지대에서 지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서 다시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평가의 자리에 노출되어 나를 단시간에 증명해 낼 것. 그래도 신입 때와는 달리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려둔 나의 프로필을 보고 한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염두에 둔 적은 없는 곳이었지만 이런저런 퇴사 후 계획들이 미뤄지던 차였고, 평가보다는 정중한 제안에 가까운 뉘앙스여서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뉘앙스라는 것은 얼마나 얄궂은지 모른다. 제안같던 연락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적임자를 찾고 있다며 연락을 줬던 그는 면접 자리에서 고압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평가자의 불쾌함이었다. 다른 면접관들보다도 내게 직접 연락을 줬던 그가 가장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 만나서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본인 자랑해 봐요. 우리한테 어필 좀 해야죠'라는 말을 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점입가경으로 더 불쾌했던 질문은 내 담당이 아닌 업무에 대해 물어봤을 때였다.


'왜 그 업무는 안 했어요? 본인이 능력이 없어서 못 한 거 아니에요?'


 바리스타에게 빵은 왜 안 만드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는 것이 현명할까. 경제학의 비교우위 개념을 가져와 설명해줘야 할까. 이런 식의 질문은 묘한 프레임을 만든다. 질문자의 연출 의도가 너무도 불쾌하다. 내가 느낀 불쾌감을 표현할지 말지에 대해서 잠깐 고민이 됐다. 결국 나는 인턴 때처럼, 불쾌감을 숨기고 태연한 척 답했다. '제 본업은 커피를 만드는 것이라서요. 그리고 논외로 저는 빵도 제법 잘 굽습니다.' 논외라는 말에 강세를 두고 말했는데 그는 과연 나의 의도를 알아들었을까.


 그 후로 몇 개의 질문이 수월하게 오가고 면접을 마쳤다. 그들이 먼저 줌을 끄고 나서야 노트북을 닫는데 회의감이 몰려왔다. 면접관은 왜 이럴까. 지원자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선의의 의도라고 해도 왜 저렇게 악의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본인들이 먼저 '간곡하게' 연락을 주지 않았던가. 돌아서면 나는 철저히 그 회사의 고객이기도 한데, 혹은 더욱이 입사를 하면 함께 할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니… 가까이 일할 동료가 이런 사람이라면 안 봐도 훤히 그려진다. 지옥 같은 회사 생활.


 평가받는 상황에 놓이면 나도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신입 때는 그랬다. 무례한 말들을 거부하기보다 잘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실은 부당함을 거절하고, 불쾌감을 표현하는 게 반드시 필요했다. 평가를 핑계 삼아 나를 갉아먹는 말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니까. 그래야 더 이상 저런 질문을 하지 않을 테니까. 사실 내가 불쾌함을 표현한다고 해서 그들의 태도가 변할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부당한 것들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며칠 후 합격 연락을 받고 나는 아래와 같은 회신의 문자를 썼다.




제게 관심을 가지고 면접을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타깝지만 면접관님은 이번 면접에서 불합격하셨습니다. 귀사의 명성을 높게 평가하는 바이나, 제 한정된 인생은 소중하기에 귀사에 입사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쓰고 지웠다. 그저 입사가 어려울 것 같다고 둘러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죄송하다고만 한 10번은 말한 것 같다. 회사들은 불합격 통보를 쉽게만 하던데, 나는 통보하는 입장이 되어도 괴롭다. 여전히 을이 되고 만다.


 전화를 끊고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왜 이런 면접을 보고 있을까.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틈이 나면 불안함이나 조급함이 밀려와 나를 몰아세운다. 이곳 또한 불안한 마음에 가 본 곳이기도 하다. 내가 간절하지 않았던 곳이어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걸까. 간절한 곳이었다면 그래도 나는 아니오, 를 할 수 있었을까.

 

 불안에 휩쓸려 아무 데나 떠내려가지 말 것, 간절함에 눈이 멀어 마지노선을 내어주지 말 것, 진짜 가슴이 뛰는 일을 할 것. 이렇게 다시 한번 순진한 다짐을 한다. 불안과 간절함이라는 적은 생각보다 강해서 다짐은 해도 해도 부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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