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링클레이터 <보이후드>
흔히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삶은 물리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영화는 삶을 그려내는 가장 매력적인 매체다. 그러나 삶과 영화는 동일할 수 없고, 영화는 삶을 그려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시간을 선택해서 보여준다.
이때 자연스럽게 시간의 특성에 따른 제약이 생긴다. 아주 먼 시점의 모습은 대역이나 고도의 분장으로 커버한다. 당연하다. 오래전 모습은 이미 지나가버려서 ‘진짜’로 담을 수 없으니까. 무척 먼 미래는 그 미래에 도달할 때까지 ‘삶’이 가진 무수히 많은 불확실성을 견뎌내어야 하니까. 영화 <보이후드>는 당연한 방법들을 두고 후자를 했다. ‘해내었다’. 12년 동안 매년마다 일주일 동안 만나 15분가량의 분량을 촬영한다는 것.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어려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한때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영화 자체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과정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으로 비례하지 않으며, 관객은 과정이 아닌 결과물로서의 영화만을 보고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오랜 시간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끈기와 노력으로 일구어낸 결과물을 보며 과정과 결과를 단칼에 나눌 수 없었다. <보이후드>는 아름다운 삶의 과정이 결과물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컸다'라고 느끼는 때가 언제일까. 특정 시점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는 계단을 오르듯 한 칸 한 칸이 아니라 비스듬한 경사를 오르듯 나이를 먹기 때문이 아닐까. '보이후드'를 지나고 있는 메이슨의 모습도 그러하다. 삶과 그렇게 닮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운 선택을 끈기 있게 수행해 나간 의지의 결과. 그래서 영화 속 어린 시절 겪는 여러 감정들 또한 더욱 강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이사를 할 때 친구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는 메이슨,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메이슨, 학교에서 인사로 뽀뽀를 하려는 엄마에게 더 이상은 뺨을 내주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메이슨.
그런 메이슨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같은 삶을 살지도 않았는데, 메이슨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삶을 다루는 영화의 매력. 평범함은 멋있고, 재밌고, 흥미로운 것의 반의어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옆 좌석에 앉았던 남자분이 훌쩍이며 울고 있었는데, 나도 그랬다. 안 좋아할 수는 있어도 싫어할 수는 없는 영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