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꽤 차가운 사람입니다

따뜻한 척 잘하지만, 사실은 조용히 거리를 두는 나에 대하여

by 뚜비뚜밥

“오, 대체로 맞는듯?”

어떤 분석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놀랍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조금 뜨끔했지만 틀린 말은 아닌’ 느낌. 나조차 언어로 붙잡지 못했던 내 감정과 구조를 누군가 말해줄 때, 나는 순간 멈춘다. 그리고 곱씹는다. 이번 글은 그런 ‘곱씹음’의 기록이다.


혼자 있는 건 괜찮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건 좀 아프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 노는 게 누구보다 재밌다. 여행도 혼자 잘 가고, 카페에서 조용히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한다. 사람들과 있으면 에너지를 쏟고, 혼자 있어야 진짜 충전이 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건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아주 가끔 찾아오는 정서적 고립감이다. 내 감정과 구조를 너무 많이 설명해야 할 때, “이걸 굳이 말로 다 설명해야 하나” 싶은 순간. 누군가에게 나를 번역하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바람.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대한 갈망에 더 가깝다.


따뜻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잘 흉내 낸다

나는 어릴 때 꽤 따뜻한 아이였다. 누군가 울고 있으면 먼저 다가갔고, 나보다 남의 기분이 더 중요했다. 진심이었고, 의식하지 않아도 배려가 나왔다. 따뜻함은 자연스러운 내 일부였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좀 달라졌다. 말을 조심하고, 상처 주지 않으려 단어를 골라 쓰고, 감정을 지나치게 배려하다 보니 이제는 그 따뜻함이 조금은 계산된 연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연출은 거짓은 아니다. 진심으로 했던 적이 있으니까, 그 감각을 기억하고, 지금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따뜻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도 진심일까?”
“아니면, 예전의 따뜻함을 복사해서 반복하고 있는 걸까?”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안다.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나는 자유롭고 싶지만, 실패는 절대 싫다

사람들은 내 선택을 멋지다고 말하곤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책을 쓰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틀을 깨는 일에 앞장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엔 아주 단단한 욕망이 숨어 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는 남들보다 앞서고 싶진 않지만, 내가 고른 길이 '실패한 선택'이 되는 건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하고, 애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의 무게를 누구보다 무겁게 지고 있는 사람이다.


감정은 공유하지 않지만, 지적으로는 누구보다 열려 있다

나는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지적인 에너지를 많이 쓴다. 생각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논리를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는다. 그런 방식의 연결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하다. 반면 감정을 내어주는 건 어렵다. ‘의존’이라는 단어엔 늘 경계심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잘 끌어들이되, 정서적으로는 선을 분명히 긋는다. 모두에게 다정하지만, 아무에게도 깊이 의지하진 않는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걸 모른다.


나는 바꾸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누군가 나와 잘 맞지 않으면, 나는 그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관계를 끊는 대신, 기대를 거두고 선을 긋는다. 겉으로는 그대로인데, 안에서는 다 끝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나조차 놀란다. “어쩜 이렇게 냉정하게 정리할 수 있지?” 그건 내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생기는 일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으니까.


에필로그: 나는 이제, 조금씩 보여지는 중이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글을 쓰지도, 공유하지도 않았을 거다. ‘분석당하는 기분’이 싫었고, 그 분석이 틀리지 않았을 때 더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싶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만큼 단단해지고 싶다. 이 글은 그 단단함을 향한 한 걸음이다.

“알고 보면 꽤 차가운 사람입니다.” 이 말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나를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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