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 독서의 애환 2
나와 동갑내기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중고책으로 샀다.
책을 펴는데 종이 한 장 툭, 떨어진다.
영수증인가...
무심히 펼쳐보다가 깜짝.
독서토론모임 남조선 지구 9.15 정기모임
남조선이라...
아직도 '113 수사본부'의 시그널 뮤직을 기억하고 있다 보니 괜히 가슴이 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한국을 '남조선'이라 부를 사람들이 '북조선'에만 있지는 않다는 걸
뒤늦게 떠올려낸다.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서 독서토론모임을 이끄는 이가
중요하니 다 같이 생각하고 한 마디씩 해보자 했거나,
읽는 이 저 스스로, 당김이 있어 표시를 했거나.
붉게 표시된 부분을 먼저 읽었다.
[내부의 적이 전능하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보상인 셈이죠.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은혜로운 독재자 덕에 산다고 믿었지만, 실은 자신의 뱃속에 웅크린 적의에 찬 폭군의 힘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굉장히 노골적인,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은혜로운 독재자'를 소유한 그들이었을 테다.
그(혹은 그들이)가 이 책을 읽으며 했을 생각이 궁금하다.
'남조선'에서,
필시 '9월 15일'에(연도는 모르지만)
어느 건물, 빛이 잘 들거나, 혹은 잘 안 드는
꼭대기 층이나 반지하방에 모여 앉아,
[은혜로운 독재자 덕에 산다고 믿었지만, 실은 자신의 뱃속에 웅크린 적의에 찬 폭군의 힘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는 깨달았을까.
나는 이 책을 중고시장에 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아멜리 노통브보다
그가 책 읽으며 품고 내놓았던 사유와 느낌의 흔적들이
날 어딘가로 이끌지도 몰라서.
그래서 독자는, 절반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