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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20. 2022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영원불멸한 관광도시가 있다면 부산이 아닐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동안 안 가도 될 것 같은 후련한 도시가 있고, 실컷 봤지만 당장 내일 또 가도 새로울 도시가 있다.

부산은 후자에 속한다. 몇십 년 전부터 한결같이 대한민국 주요 관광 도시 중 하나인 부산광역시는 나 또한 여러 번 가 본 도시다. 다녀온 횟수로 치면 아직 안 가본 지역도 많으니 충분히 다른 지역을 먼저 다녀올 것 같은데 이번에도 또다시 부산행을 택했다.

부산은 올해도 새로웠고 덕분에 흥미로웠다. 이번 부산 여행은 대중교통으로 부산을 처음 가 보는 엄마를 가이드하는 여행이었는데 말이 가이드지 나 또한 모두 처음이었다. 심지어 가고 또 갔던 해운대조차도 처음이었다. 바다는 언제나 다르지 않은가.

다 안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익숙하다고는 말할 법도 한 부산이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 그려진 눈부신 작품들

100% 운이었다. 한 달 전에 부산행 SRT를 예매했을 때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불꽃축제였으니까. 출발하기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부산 세계불꽃축제 재개최가 확정됐다(나중에 알았는데 불꽃축제 재개최가 확정되자마자 비행기와 기차가 난리도 아니었단다).

불꽃축제가 열리는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가는 차도는 해운대서부터 길이 꽉 막혔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하차해야 할 정류장에서 세 정거장 전에 내려 뛰어갔다. 롱패딩을 입어 짧아진 다리로 슈퍼마리오처럼 뛰는 중에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들은 모든 쾅- 소리 중 가장 임팩트 있는 소리였다. 전쟁 난 줄 알았다. 영상에서 본 실제 전쟁 영상과 같은 종류의 '쾅'이었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에 가까워지면서 불꽃의 형체를 볼 수 있었는데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우와 대박"이라며 다소 예스러운 그리고 로봇 같지만 진정성 200%인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주관적이고 또 주관적인 소감이지만 기억 속의 여의도보다 훨씬 강렬한 불꽃이었다.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선과 터지는 순간으로 정확하게 표현했고 그 스케일 또한 거대하다 못해 미쳤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어떻게 터지고 있는 불꽃 위에 또 마구잡이로 불꽃을 쏘는지. 부유한 불꽃은 아름답다 못해 치명적이다.

불꽃이 이렇게 다양한 선을 갖고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때로는 익은 벼처럼 노랗게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하늘을 향해 슬로모션으로 곧게 올라가는 선들은 올해 본 수많은 유명 미술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법했다. 불꽃'놀이'가 아니라 작품이었다.

우주의 신비로움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트렌디함의 최전선

작년 부산 여행 때 해리단길에 갔었다. 해운대역 뒤로 채워진 감성적인 파스텔톤의 카페와 식당들의 조합이 서울에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요즘의 거리를 방불케 했는데, 부산도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이곳저곳에 생기는 모양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전리단길을 다녀왔다. 서면 일대에서 M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는 거리라는 전리단길에는 실제로 웨이팅이 있는 카페와 맛집들이 많았다. 서울의 을지로처럼 '여기에 이런 곳이 있다고?'싶은데 정말 있는 알 수 없는 거리다.

한 카페는 아이돌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전시장이 되어 팬들의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고 어느 카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다락방 같았다. 줄을 서서 먹는 빵집과 요즘 트렌드인 샐러드 가게도 볼 수 있었다. 가게마다 포토존도 깨알같이 챙기고 있어 가게 앞에서 사진 찍을만한 벤치나 데코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울에서는 생활권이 아니라 가보지 못했던 엽서 가게를 부산 전리단길에서 다녀왔다. 부산점을 두고 있는 포셋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요즘을 기준으로 보면 다소 특이하다. 엽서 가게인데 누군가에게 부치지 않아도 소장 욕구로 자꾸만 사게 되는 마성의 엽서가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물에 담긴 과일을 콘셉트로 한 엽서부터 계절감을 드러내는 그림이 담겨 금빛 리본으로 선물 상자처럼 포장된 홀리데이 엽서 그리고 유명 일러스트 작가들이 제작한 캐릭터 엽서까지 귀엽고 예쁘고 창의적인 그야말로 '혼자 다 해 먹는' 엽서 가게다.

보다 보면 간혹 예쁜 쓰레기 중 하나로 불리는 손바닥만 한 엽서 한 장이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 또한 두장의 엽서를 구입해 동생에게 선물했다.


전리단길은 엽서 가게에 놓여 있는 엽서들만큼이나 다양함을 간직한 곳이다. 길을 걷는 내내 어느 때보다 개성 있고 그 개성을 서로가 그리고 스스로도 존중하는 MZ세대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한낱 유행일지라도 어쨌든 현재의 누군가를 대변할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건 그 누군가에 소울메이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바람직한 현상이다.

포셋에서 마음이 갔던 풍경


감당이 안 되는 먹거리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이지 유독 감당이 안 되는 도시다. 먹거리 측면에서는 더 그렇다. 이렇게나 넓은 도시에 먹을 게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면 살지 않는 이상 답이 없지 않은가.

1박 2일로 온 여행자에겐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부산의 대표적인 음식만을 공략했다.

밀면 돼지국밥 어묵 꼬치 그리고 부산에서 시작된 낙곱새를 먹을 수 있었는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밀면은 정말 부산인 걸까. 포항에서 먹은 밀면을 첫 입만에 뛰어넘은 부산 밀면은 새콤달콤한 양념과 쫄면과 냉면 어느 중간의 쫄깃함을 갖고 있는 면의 조합이 중독적이다. 겉보기에는 비빔냉면과 흡사한데 먹으면 확연하게 다른 맛이 되니 음식도 사람만큼이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밀면의 짝꿍은 만두다. 쫄면도 냉면도 만두에 돌돌 말아먹으면 맛있는 것처럼 밀면도 만두와 함께 입에 넣으면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갔던 밀면집의 만두는 겉피가 일반적이지 않아 다양함에 새로움까지 추가된 맛이었다. 만두 소가 보일 정도로 얇은 피는 감자떡 같았다. 감자 전분의 쫀득함이 담겨있어 일반적인 밀가루 만두보다 씹는 맛이 있는 만두였다. 말해 뭐할까. 당연히 맛있지.

참 신기한 일이다. 왜 부산어묵은 항상 남다르게 맛있을까. 어육량은 다른 지역 어묵도 많이 넣을 수 있을 텐데 왜 어묵은 언제나 부산일까. 이번에도 어묵을 실컷 먹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역사 내에 있는 어묵 가게에서 치즈 핫바를 먹더니 해운대 전통시장에서 어묵 꼬치를 집어 들었다.

역사 안, 시장 어디에 있든 부산 어묵은 맛있고 또 맛있다. 찰진 식감과 어묵 특유의 단 생선살 맛은 대체를 찾기 어려운 맛이다. 아마 부산에서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음식이 아닐까?

아침 식사를 꼭 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여행자가 부산을 간다면? 아침 식사는 무조건 돼지 국밥이다. 부산 돼지국밥은 부산을 채우고 있는 음식들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해 부산 여행의 테마를 '국밥 로드'로 잡아도 무방할 정도다. 그 말인즉슨 골라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만 허락하면 누구나 인생 국밥집 하나는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 중 다녀온 곳은 맑은 사골 국물에 돼지고기를 가득 넣어 만드는 국밥집이었는데, 재료만 보면 심플한 축에 속하는 국물이다. 들어간 거라고는 파와 고기가 다였으니까. 여기에 소면을 따로 주시는데 취향껏 넣어도 좋고 안 먹어도 음식의 완성도에 지장은 없다. 국밥의 국물 맛은 텁텁함과 싱거움을 양극에 놓고 점수가 매겨지기 마련이다. 이번에 먹은 돼지국밥은 곰탕 딱 그 정도의 깔끔함을 지녔다. 아침에 아저씨들이 곧잘 드실 것 같은 맛이랄까. 아침부터 무게감 있는 국밥을 먹고 싶지 않다면 역시 뽀얀 국물의 돼지국밥이 적절하겠다.

국물 속 고기는 딱 김장할 때 먹을 것 같은 수육이다. 충분히 익어 부드러운 고기는 마치 국물에 푹 담겨 익은 어묵 꼬치 같다.

지금 생각해도 이보다 아침식사로 제격인 메뉴가 있을까 싶다.



겨울 바다도 따뜻할 수 있을까

겨울 바다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대명사처럼 언급하는 단어다. 그냥 바다보다는 겨울 바다라는 어감이 더 낭만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데 사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오지게' 춥다. 대학생 시절,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겠다며 새벽 기차를 타고 바다로 향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친구 집에서 진짜 이불을 들고 갔는데도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니 해가 뜬 뒤에도 너무 추웠다. 동사하는 줄 알았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겨울 바다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게 됐고 다시는 일출을 보러 바다로 가진 않는다. 겨울 바다는 그냥 오지게 추운 바다다. 부산 바다를 제외하고.

부산 바다에서만 오래 서 있어도 따뜻하다는 말은 아니다. 바다가 지니고 있는 풍경이 따뜻한 느낌이라는 거다. 부산 바다는 광역시의 바다답게 광활하고 웅장한데 의외로 윤슬이 잘 어울린다. 광안대교 등의 조명 덕분에 밤 바다가 유명한 듯싶지만, 부산 바다는 해가 떠 있는 시간도 큰 볼거리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하늘에 떠 있는 빛 조각을 나눠 가진 바다는 겨울 트리를 칭칭 감고 있는 조명들만큼이나 황홀한 따뜻함을 보여준다. 연말 특유의 따뜻함이다. 부산 바다는 어쩌면 연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바다이지 않을까.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해변열차를 타고 가면서 본 일몰의 바다
해변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밤바다 직전의 바다
오전에 본 송정 해수욕장



전적으로 일정을 짜고 가이드한 여행으로, 1박 2일의 탄력적인 여행이었다. 탄력적이라 할만한 게 이보다 길게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집에 와서 일기를 쓰는데 3박 4일이라고 잘못 쓸 뻔했으니까. 1박 2일이니까 뺀 곳도 많은데 한 게 뭐 이렇게 많냐.

하지만 이내 깨달은 건 부산이 그런 곳이더라. 갈 때마다 새로움이 넘쳐나서 매번 처음 가 본 사람처럼 바쁘게 돌아다니게 되는 곳.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 그래서 어깨춤이 멈추지 않는 곳. 일주일을 있다 왔어도 똑같은 감상을 적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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