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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Sep 22. 2022

뉴욕이 기회의 땅인 이유

골방을 탈출해 무려 미주까지 날아간 나는 뭘 배우고 가져왔을까?

⎡코로나 시대에 떠나는 첫 해외여행. 5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글을 쓴다. 뉴욕 여행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출국일까지 남을 일자를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시점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오랜만이라 기록할 수밖에 없다.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약 2개월 전이다. 2020년 2월 한국에서도 그리고 8월 31일 지금도 (다녀)오길 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코로나가 올 줄 모르고 1년 전쯤 끊은 항공권은 여행자가 코로나 시대를 버티는 구명조끼였다. 국내여행도 잘 못 가는 상황에 구명조끼 없었으면 우울함에 고로로로록-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다.

코로나로 해외를 절대 못 가는 거나 다름없는 시기에는 마치 국내 최장 터널인 인제 양양 터널 속 같기도 했다.

'이건 언제 끝나?'

'뭔 터널이 가도 가도 끝이 없냐.'

끝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끝이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들 만큼 긴 터널은 지나갈 때마다 어이구야- 아득함을 담은 추임새를 내게 하는데 하늘 길이 닫혀있는 동안 딱 그랬다. 더군다나 모험을 좋아하고 제약이 있는 상황 자체를 꺼리는 성향을 갖고 자란 어느 이십 대에게는 특히 (조금 과장하자면) 골방 같았다.

그런데 그 골방에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2022년 9월, 다시 비행기를 탄다. ⎦

(뉴욕으로 출발하기 3일 전, 쓴 일기)


골방을 탈출해 무려 미주까지 날아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왔을까?

이 글은 뉴욕에 있던 '나'에 대해 기록해두는 글이다.


해외여행할 때마다 벅참을 느낀다. 하는 일에 대한 욕심, 생각보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잘할 수 있는 큰 사람이라는 인지, 더 큰 땅을 무대로 살고 싶다는 포부, 모두 기내에서 보는 구름만큼 광활해 감당이 안 된다.

뉴욕은 특히나 그렇다. 지금까지 여행한 모든 도시 중 가장 편향과 틀을 깨는 대도시다. 그냥 '대도시'가 아닌 포용과 인정이 큰 나라였다. 이 나라는 남을 따라 하거나 눈치 준다는 표현이 없나.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이를 보완하는 능동적인 의지와 책임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걸 온몸으로 경험한 시간들이었다(왜 그런지는 이전 글에서 따로 서술했다).

이상한 나라에 갔던 앨리스의 심정이 이해되는 여행이었다. 처음엔 당황 그 뒤엔 신기함 그 뒤에는 모험가가 된다. 새로운 경험이 하루하루 쌓일 때마다 의지도 함께 쌓인다.

앞자리가 3이 돼서야 처음 미주 땅을 밟아 본 여행자에게도 자유와 책임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정은 도전의 연속으로 완성됐다.


유럽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문장을 영어로 말했는데 유럽에서는 단어와 바디랭귀지만으로 해결됐다면 완벽한 문장을 말해야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숏 사이즈를 받아내는 것도 베이글 가게에서 원하는 내용물을 모두 넣어 받는 것도 여러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나중에 알았는데 뉴욕의 스타벅스 표준 음료 사이즈는 그란데부터 시작이란다. 톨도 아니고 숏사이즈는 직원들에게도 희귀한 사이즈라고 한다).

뉴욕의 모든 음식점은 마치 써브웨이같다.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가치관과 선호를 지니고 사는 도시라 단일 메뉴로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도시라 커스텀 혹은 다양한 옵션을 지니고 있다. 스타벅스가 밀크부터 얼음 토핑 시럽 등 다양한 커스텀을 지니게 된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로 온갖 식당 하다못해 1달러짜리 피자 가게도 김밥천국같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덕분에 마치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오랜 속담처럼 뉴요커 코스프레를 하느라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써브웨이를 처음 접할 때의 멘붕을 베이글 가게에서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 공포가 가미된 멘붕이었다(몇 번 말로 시도하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파파고를 들이댔는데 직원들끼리 내 휴대폰을 가지고 토론을 하더라. 문장은 맞던데.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두 끼 혹은 세끼를 다양하게 먹고 싶다는 자유와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직원들에게 최대한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고 책임을 다하는 과정은 분명 도전이었다. (베이글을 제외하고) 원하는 것을 받아냈을 때의 신나는 기분이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해주는 순간들이 매일 존재했다. 작은 성공은 또 다른 도전을 낳는다. 이 문장 저 문장 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영어 점수가 형편없던 꼬꼬마가 별 일이다. 뉴욕에서도 처음에는 마음고생 좀 하겠지만 어찌어찌 구르다 보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뉴욕을 여행했으니.


뉴욕이 아닌 뉴욕'여행'을 중점으로 두더라도 도전에 대해 기록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엄마와의 여행'.

이미 잘 아는 곳을 가이드하는 것과 나도 처음인 곳을 가이드하는 건 난이도가 다르다. 다 같이 헤매고 힘들고 가이드의 등에서는 땀 구슬이 또르르.... 가을 날씨 속에서도 난처함의 땀 구슬을 굴릴 모습을 상상하고 떠난 여행인데 (다행히) 생각보다 잘 해냈다. 네모네모한 뉴욕의 잘 설계된 도시 계획 덕분인지 지하철과 길도 구글맵 하나로 거의 착오 없이 다녔고 티켓을 한국에서 구입해간 덕분에 티켓 창구에 줄을 서야 하는 일도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한 보람이 있구먼!  코로나 이전에 갔던 체코 여행에서 느낀 아쉬움울 2년 뒤에 드디어 해소했다.

그럼에도 이건 100% 나만의 도전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게 엄마도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채소와 과일 등 산뜻하고 깔끔한 맛을 경험하기 힘든 미국 음식을 견뎠을 거고 뉴욕의 볼거리 특성상 도보 이동이 많아 다리 상태도 심각했을 거다. 엄마의 기억 속에도 뉴욕은 도전의 도시가 아닐까?


여행자 입장에서도 뉴욕은 본인이 행동하려는 의지만 갖추면 장벽이 없는 곳이다.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고 우당탕탕하고 있으면 '쏘 스윗한' 현지분들이 등장했다. 지하철역 출구 계단에서 왕 큰 캐리어를 대신 옮겨주시기도 했고, 여행 내내 잘 안 긁히던 교통카드로 우왕좌왕할 때 대신 교통비를 내 준 분들도 여럿 계시다(그러고 보니 교통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네?). 지금껏 여행하면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처음이라 현지인들의 적극성과 배려에 크게 감동받았다.

광고인 박웅현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기억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아무래도 뉴욕을 오래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취적인 분위기의 뉴욕에 있는 동안 작은 도전과 작은 성공을 알차게 경험해서 그런지 한국에 오자마자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기존에 도전했던 러닝을 안정궤도에 올려놓았고, 목표가 있었던 개인 채널은 목표 지점에 깃발을 꽂았다. 그 이후에 지루함을 느끼곤 했는데, 뉴욕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재미를 경험하게 해 줘서 그런지 앞으로 나아갈 혹은 옆으로 뻗을 힘이 생겼다.

피아노 학원 상담과 찜해둔 베이킹 클래스도 예약했고 출사도 다녀왔다. 그 와중에 국내여행도 몇 군데 계획했다.

뭐라도 도전을 하면 얻는 게 있을 것 같은 상기된 기분이 날마다 존재한다. 기분의 근원이 근자감일지라도 아무렴 좋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거대한 1,000을 꿈꾸면 감당할 수 있는 큰 기쁨 100은 이루겠지.

뉴욕은 기회의 땅이 맞다. 현실은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을지라도 적어도 내 기억 속 뉴욕은 행동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무엇이든 다 가능한 곳인 건 확실하니까.

한국에 오니 반팔이 팔 시린 날씨가 찾아왔다. 도전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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