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간의 뉴욕여행을 마무리하고 떠난다. 세계여행 다섯 번째 국가였던 미국의 여러 나라를 도는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뉴욕 장기 여행이다. 미국 안에서도 생활 물가가 높은 뉴욕에서 장기 여행을 하는 건 사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다. 특히 세계여행자는. 돈을 넉넉하게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물가 비싼 나라에 오래 머무는 선택은 잘하지 않는다. 경비 운용에 따라 한 두 국가를 더 머무를 수도 있는데 굳이 그 돈을 고물가에 희생하면서 지내는 장기여행자는 없다.
그럼에도 '최대한 아껴보지 뭐'라며 돈을 쏟아부은 이유는 오직 경험이었다. 2년 전 뉴욕을 처음 가봤을 때 어두운 듯 알록달록한 도시 분위기에 반해 '언젠가 이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 바람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출국 몇 달 전에 발견했고 빠르게 지원하고 수속을 밟았다. 비용에 시간까지 더하면 꽤 큰 배팅이었지만, 이 여행이 끝나면 연차에 목매다는 직장인이 된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나를 뉴욕 생활 속으로 밀어 넣었다. 뉴욕에 취직하지 않는 이상 뉴욕에 장기간 있을 경우의 수가 0인 마당에 이 기회를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선택한 뉴욕에서 언제나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돈을 아끼면서 지내는 건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감정적인 소모가 있다. 먹는 건 뉴욕 안에서 저렴한 편인 것들도 워낙 입맛에 맞는 게 많아서 괜찮았는데, 사고 싶은 걸 못 사는 건 조금 마음 아프더라. 모마 미술관에서 벽에 붙일 포스터도 사고 싶었고 스탠드 서점에서 초록색 파우치도 갖고 싶었다. 소호에서도 사고 싶은 옷들이 있었는데 미술 작품 보듯이 눈으로만 봤다. 돈 없는 게 죄다 죄야 시무룩해 하면서.
안 그래도 바람 많이 부는 뉴욕에 한파까지 한 차례 찾아와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 주간이 있었다. 짐 줄인다고 패딩도 경량패딩밖에 안 가지고 와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패딩을 사네 마네- 치앙마이가 좋았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서 너무 힘드네 어쩌네- 코를 훌쩍대면서 징징댔는데 그게 벌써 과거의 일이다.
지원했던 일도 처우나 내용면에서 한국에서 들은 것 이상으로 다른 부분이 많았다. 타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달까. 도피할 생각으로는 절대 해외 취업하지 말아야겠다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쯤 되면 아무리 2년 전에 인생 도시였어도 점수가 깎일 법도 하다.
"아 거기. 처음에는 좋았는데 이제는 그냥 그래."
하지만 뉴욕을 떠나온 지 하루가 지난 이 시점에서 생각해도 뉴욕은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다. 막상 걸으면 볼 건 다 본 것 같은데 한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추워도 더 부지런히 걸어볼 걸 그랬나. 돈 좀 그냥 써서 더 많이 먹고 올 걸 그랬나. 세계여행이 끝나도 뉴욕은 유독 봤던 풍경들이 자주 떠오를 것 같다. 심지어 얼굴이 찌푸려지고 괜히 서러웠던 시간들까지도.
왜 나는 뉴욕을 여전히 좋아할까. 그 이유를 찾아 질문을 파고 판 결과는 가성비 있게 잘 지낸 덕분이다.음?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뭔 가성비?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과 쓴 돈 그리고 시간. 이 모든 것의 총합을 특정 값으로 환산해 비교해 봤다. 손해 본 것과 얻은 것. 그 결과 얻은 게 더 값어치 있다고 판단했고 충분히 잘 해낸 뉴욕 여행이구나 결론 내리게 됐다.
지구에 있는 여러 도시 중에서도 가장 도시다운 곳에서 지내는 건 영양가 있는 경험이었다. 푸드 패션 뷰티 스포츠 은행 등 새로운 브랜드들을 많이 접하고 이용했다. 그러면서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는 무엇인지 이 도시에서 없으면 안 될 수준에 다다른 브랜드와 서비스는 무엇인지 알게 됐다. 굳이 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보였다. 달랑 50일 지내고 떠나는 나조차도 생활하려면 이용해야 했으니까.
마침 시차도 맞겠다. 현지인들의 생활에 빠질 수 없다고 판단한 회사에 주식을 넣었다. 소액이라도 주식을 넣고 나니 미국 시장을 읽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지내는 동안 미국 관련 기사들도 자주 클릭했는데 아는 게 생긴 만큼 앞으로도 관심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욕에서 독립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보인 현실도 있었다. 특히 해외살이는 유토피아일 거라고 생각하며 도피 목적으로 타국으로 도망갔다가는 외롭게 좌절하는 결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해외라고 모든 게 다 낭만적이고 술술 잘 풀리는 게 아니다. 눈앞에 닥친 시련 혹은 미션을 이겨내는 방법은 일단 한번 해보겠다는 삶의 태도지 눈 감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회피하고 가는 곳에 천국은 없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는 더욱더 그렇다는 걸 뉴욕에 있으면서 그리고 뉴요커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느꼈다. 부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의 터전을 0부터 만들어가는 이민자 그리고 유학생들을 더 존경하게 됐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도전이 아니다.
딱히 준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해외살이 혹은 취업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페인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도슨트하면서 살아도 좋겠는데?' 생각했다. 아주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고 중요한 깨달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 생활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견고하게 커리어를 쌓고 싶어졌다. 한국 월급쟁이의 삶을 조금은 좋아하게 됐달까. 이전에는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며 씩씩댔는데 지금은 내가 주인인 사업과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균형 있게 모두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 사업에 관심이 생겼다. 정확히는 '사업가의 정신'에 관심이 생겼다. 무슨 가게를 낸다거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한 대단한 걸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럴 깡은 전혀 없는 외강내유형 인간이다. 거창한 '짜잔~!'보다는 '사부작사부작'을 선호한다.
다만 어떤 것을 행할 때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운영하는 작은 채널, 매일같이 출퇴근해서 하는 업무들, 그 밖의 도전들. 이 모든 것들을 할 때 좀 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뉴욕에 있으면 뉴욕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럽 아시아권으로 뻗어나가는 브랜드가 많다는 걸 눈으로 이해하게 된다. 반대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호기롭게 타임스퀘어에 매장을 연 타국 출신의 브랜드들도 많다. 하다못해 파리바게트도 맨해튼에서 곳곳에 보이는데 가끔은 원래 미국 브랜드 같기도 하다.
모든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푸드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보다도 커스텀이 기본값이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써브웨이처럼 모든 요소를 선택할 수 있다. 아니면 수많은 메뉴 중에서 선택을 하거나. 이쯤 되면 아주 세밀한 선택 자체가 미국 문화라고 생각해도 될 법하다.
그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 도시에서 장사 그 이상의 포부가 느껴졌다. 작은 동네 만족시키는 걸 목표로 주인의 노동력으로 운영되는 그런 장사의 영역이 이 도시에는 없어 보였다. 모든 브랜드가 세계 일등을 노리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다겠며 눈에 불을 켜고 서로 경쟁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운영하는 채널들을 자기만족에 가까운, 취미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무언가로 여겨왔다. 그게 틀린 생각인 건 아니다. 뭔가를 할 때 일단 내가 즐거워야 오래 지속할 수 있으니까. 다만 더많은 사람들을 향한 책임감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걸 사업으로 여기기로 했다. 사업을 하려면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타사와 비교했을 때 내 서비스만의 강점과 색깔도 있어야 한다. 그 와중에 변수에 최대한 대응할 수 있는 견고한 수익 모델도 설계돼야 한다. 이렇게 사업가로서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도구를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를 넘어 불편함을 개선시켜 주는 하나의 서비스로 자리 잡고 싶다. 그리고 이 서비스가 가능한 여러 곳에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해외까지도. 한계를 두지 않기로 했다. 다 내 노력에 달린 거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목마름을 유럽에 이어 여기서도 느꼈다. 게다가 미국은 200% 영어인 나라라 더 작아지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가 정당하게 받을 건 받고, 사고 싶은 걸 사고,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알아내야 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덕분에 습득한 문장이 많았지만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긴장도 되고 눈치도 보이고.... 사람은 아는 만큼 당당할 수 있더라. 영어 공부에 대한 절실함이 또 한 번 자라났다.
영어만 할 줄 알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외국인 대상으로 로컬 투어 가이드를 할 수도 있을 거고 미술관 도슨트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어차피 인솔은 여기서 도가 텄으니 한국에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해탈이다).
그래서 다음번 뉴욕에는 현지 밋업을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기본 회화 실력은 갖추고 가고 싶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영어 버전으로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뉴욕에서 느낀 답답함을 잊지 말아야지.
유연하게 선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무조건 A 아니면 B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사실 보기가 두 개 이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고, 선택하는 것도 복수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뉴욕의 커스텀처럼 말이다. 토핑 이것저것 수북이 넣을 수도 있는 거다.
설령 아차-싶은 선택을 했더라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 있는 거였다. 그 기회를 단번에 잡는 방법은 내가 그 상황에 어떤 태도를 취하냐에 달린 거고. 예상한 맛만 맛있으란 법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것도 맛있네?' 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삶의 태도'임을 깨달았다.
물론 이렇게 알게 됐어도 살면서 또 서툰 모습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다짐한다.
언제나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일단 해보자. 그리고 조급해하지 말자.
아쉬운 선택이었어도 시간의 지체와 기회비용에 연연하지 말자.
이런저런 터득과 경험 값이 뉴욕에 바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내 노동력보다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어쩌면 예정됐던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될 수도 있는데 이쯤이야. 강습료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데 단순히 경비만 가지고 계산해도 스페인에서 15일 동안 1,588,830원을 썼는데 그보다 훨씬 물가 비싼 미국 뉴욕에서 50일 동안 2,100,000원을 썼으니 이 정도면 가성비 있게 잘 머물다 가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