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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y 19. 2024

15개국 52개 도시, 세계여행을 마치며

2023년 11월 13일부터 2024년 5월 7일까지.

2023년이 아니라 2024년이라고 써야 하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울 지하철을 탈 때마다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여행하는 그곳에

여행자인 나에게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갑자기 미래로 순간이동한 것처럼 황당한 기분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열흘. 이제는 슬슬 회고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 노트북을 펼쳤다.

호주 태국 포르투갈 스페인 미국 캐나다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영국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터키 요르단. 안전상 그리고 경비상 다음에 따로 가기로 기약하기로 한 곳들이 있어 출국 전 계획했던 것보다는 적은 도시를 여행했다. 특히 볼리비아 페루 브라질 3개

국을 포기했는데 예산을 홀라당 다 썼던 터키에서 생각했던 건 최선이었다는 거다. 남미를 갔다면 반대로 유럽과 중동을 많이 포기해야 했을 거다. 그건 내 여행 취향상 우선순위를 어기는 결과다. 코스를 돌고 한국에 와 있는 지금 되돌아보면 대견할 정도로 잘 해낸 완벽한 코스다.

무엇보다 이번 세계여행에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던 세 가지를 모두 지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1) 한 도시에 2주 이상 머물며 숨은 매력 발견하기

2) 스카이다이빙하기

3) 미술관 최대한 많이 가기 (특히 모마 미술관 다시 가기)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세계여행자들이 하나같이 말한 건 모든 걸 다 이루려고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세 개 정해서 그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게 노력하라는 거였다. 세계 모든 나라 도시를 다 가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예산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잘하라는 이야기였다. 그 조언을 자주 떠올리면서 다녔다.

그 결과,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에서 각각 2주 이상 머물렀으며 모마 미술관은 세 번을 관람했고 심지어 미술관 입구에서 인솔자 역할까지 했다.


세계여행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돈을 모아 떠날 거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에 큰 특이점이 됐다. 많은 경험과 변수 그리고 생각을 반년간 뒤집어썼다. 머리 위로 된통 물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한 번에 많은 양이 왈칵 쏟아졌다. 2000만 원을 지불한 게 아깝지 않다. 내가 평소 지내던 루틴과 환경 안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을 것들이었다. 돈 그 이상의 자산이다.

심지어 잃을 가능성도 적은 자산이다. 하나하나가 너무 강렬했다. 만나서 반가웠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감정과 상황도 있었고 '이걸 이번 생에 보다니!'와 같은 극적인 놀라움도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깨닫게 된 순간들도 있었다. 수십 가지 에피소드들은 훗날 각각 글로 풀어갈 예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수십 가지 에피소드를 종합해서 세계여행하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어느 책에서 발견했던 문장을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내 생각인 것인지는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깊게 이해하고 세상을 넓게 볼 줄 알 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잘 알고 나름대로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내 이야기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또 성격이 긍정적이고 그러려니-하고 타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인 데다가 여행까지 평균치 이상으로 좋아해 편견 없이 세상을 넓게 본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생각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출발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가 특정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뭘 힘들어하고 어떤 이유로 좋아하는지 하다못해 왜 내가 그 음식을 좋아했는지조차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가장 큰 건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시차가 한국과 정반대에 가까울수록 금전적인 부담이 가중될수록 쓸쓸한 감정은 커진다. 특히 공감대 형성에 대한 외로움이 컸던 것 같다. 여행자와 직장인의 일상은 다르니 내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한 에피소드를 터놓고 말할 곳이 없었다. 직장 다니느라 출퇴근하기 바쁜 사람들을 붙잡고 '오늘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갔는데 어쩌고저쩌고...'와 같은 여행기를 매일같이 말하는 건 자칫 자랑으로 오해받을 수 있을만한 소재다. 아무리 그게 안 좋은 일이었다고 해도 직장인의 눈에 안 좋은 일로 느껴지겠는가. 상대방이 세계여행을 해 보지 않은 이상 직장인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게 뻔했다. 터놓고 말할 곳이 없다 보니 체력이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감정적으로 외로웠다. 언어가 안 되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혼자 타지로 이민을 간다던지 해외 취직을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혼자 살면 아플 때 가장 서럽다는데 의외로 아플 때 혼자 해결하는 건 하나도 서럽지 않았다. 해외라서 그랬을 것 같다. 의외로 해외에서 생필품이나 약을 사는 게 쏠쏠한 재미였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케이스에 담긴 약을 먹는 게 장기여행자라서 할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졌다. 오죽하면 해외 헬스케어 브랜드 주식까지 매수했을까. 여러 번 감기에 걸려서 나중에는 약도 안 먹긴 했지만 스스로를 챙기는 과정들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일단 GO가 몸에 배어있음과 동시에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도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 여행하면서 가봐야 제대로 알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특히 치안이나 택시 이용에 관한 걱정을 자주 했다. 한국에서도 택시를 거의 안 타기도 하고 혹시 모를 상황이라는 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여행하면서 점차 인지하기 시작해 없던 걱정이 여행하면서 생겼다. 막상 가보면 별 거 아닌 경우가 전부였지만.

오히려 안다고 생각하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변수가 꼭 생기더라. 마치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믿어왔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실수도 정말 많이 했다. 벌금도 내고 노트북도 잃어버리고 항공권도 변경하고 파우치와 자물쇠 하나도 잃어버렸다. 조금 더 꼼꼼하게 생각하고 조금 더 부지런하게 행동했다면 많은 변수를 줄일 수 있었겠구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끼면서 사는 건 한계가 있고 나는 특히 그 한계선이 낮다는 것도 확신하게 됐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아끼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

바게트 하나로 하루 끼니를 끝낸 적도 있고 빵만 먹으면서 몇 개월을 버텼다. 스위스에서는 견과류로 한 끼 식사를 끝낸 적도 있다. 배부르게 먹고 싶으면 맥도널드를 갔다. 특히 유럽의 경우 맥도널드에 유로 세이버 메뉴를 파는데 5천 원 정도의 가격에 세트 메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버거도 작고 빵-고기-빵 이런 식으로 매우 단순한 조합이다). 감자튀김과 콜라를 먹으면 배부름을 느낄 수 있어 대부분의 나라에서 맥도널드를 찾아갔다. 음료가 너무 마시고 싶을 때는 밀크티로 한 끼를 해결했다. 우유 베이스는 배가 어느 정도 차기 때문에 꽤 긴 시간 동안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저녁이 되면 배가 아플 정도로 큰 배고픔이 찾아올 뿐.

마트에서 장을 봐서 취사를 할 수 있는 숙소에서 그나마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밖에서 "맛있겠다" 눈으로 보기만 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숙소도 프랑스 아비뇽과 파리 그리고 가족들이 왔던 크로아티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세계여행 이전에도 혼자 묵는 숙소는 무조건 호스텔을 택한지라 호스텔 적응력은 200%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천장에 거미줄이 늘어져 있고 머리맡 침대 상판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게 눈에 보이는 곳에서 잠을 자고 앉아 노트북 타이핑을 치고 있는 건 쉽지 않더라. 물티슈로 닦아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하얗게 먼지가 쌓이는데 감기가 안 걸리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더라.

지하에 있어 낮에도 캄캄한 객실에서도 자봤는데 뭔지 모를 찝찝함이 잊히지 않는다.

최대한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어 이렇게 저렇게 아낄 수 있는 곳에서 돈을 아껴도 코로나 이후에 전 세계 물가가 코로나 이전보다 세 배 이상 오른 상황은 이길 수 없다. 생각보다 빠르게 잔고가 줄어든다. 나중에는 '나는 정말 가난이 싫어' 혼잣말까지 하게 되더라. 사람이 돈 때문에 머리카락을 쥐어잡게 되는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경험했다. 오죽하면 여행 중에 부동산 강의를 결제했다. 안정적인 내 공간을 갖는 게 얼마나 삶을 안온하게 만드는지 너무 잘 알아버렸다.

돈은 중요하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행복을 향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재벌처럼 막대한 부를 쌓지는 않더라도 혼자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사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로운 통장은 만들어야 한다. 뭐라도 부지런히 해야 하는 이유다. 여행하는 동안 느낀 지긋지긋한 가난을 부디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노력하고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난 이후에 내가 가장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것. '영어'다. 아직도 지긋지긋하다.

여행사도 다녀봤고 여행 에디터로 일을 하고 매년 해외를 나가다 못해 세계여행까지 감행(?)한 사람치고 영어 실력이 꽝이다. 운 좋게도 영어를 실력까지 써야 할 정도로 필요했던 상황이 없었고 해외를 다녀와도 짧게 다녀오니 간절함이 부족했다. 스스로 성인 영어 학원도 수강해 봤지만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나마 오래 붙잡은 게 반년 정도 썼던 영어 단어 애플리케이션 정도? 영어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또 우선순위에서는 항상 미뤄두는. 학습에는 그리 유용하지 못한 흥미였다.

이러다 큰코다친다. 정말 제대로 다쳤다. 장기여행은 100% 여행이라기보단 일상 반 여행 반인데 듣기도 안돼 말하기도 안돼... 울기 직전까지 답답한 순간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구사할 수 없는 건 불편함 그 이상이다. 자존심이 바사삭 부서진다. 사람이 작아진다.

숙소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자기소개 외에는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미안 나 영어를 잘 못해" 답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니 만들어질 수가 있나.

영어를 반드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글 영상 사진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나도 자주 들여다봤다. AI가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시대다. 앞으로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미래에 콘텐츠를 만드는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여행하며 틈틈이 고민한 결과는 '내'가 만든 콘텐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결국은 '나'더라. 기계가 만든 것보다 사람이 만든 것이 더 가치 있으려면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중요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어떤 크리에이터의 팬이 되어 그 사람이 만든 영상 글 사진 그 이상의 유형을 돈을 주고 기꺼이 사는 것처럼. 크리에이터가 좋기 때문에 뭐든 다 좋아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마음 가짐을 줄 수 있는 제작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떻게 나에 대해 보여줄 수 있을까는 여행이 끝난 지금도 유효한 고민이다.


한 번에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영감 덩어리였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브랜드들을 마주하면서 '이것도 재미있겠는데?' '이렇게도 살 수 있겠네!' '이런 것도 있구나~!' 배우고 또 배웠다.

'한국 안에서만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설령 한국에서 시작하더라도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확장된 사고방식을 가지자'

한국에 있을 때는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다 내국인 대상이었다. 회사도 국내를 타깃으로 한 브랜드 일을 해왔고 나 또한 한국어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니 당연히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했다.

온통 외국인 속에만 있으니 그게 얼마나 편협한 사고방식이었는지 알게 됐다. 영어가 장벽이면 배우면 되는 거고 지금 준비를 시작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겠더라. 이걸 깨달으면서 시야가 스스로도 체감될 정도로 크게 넓어졌다. 세계여행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전자책으로 경영 서적을 읽고 경영자의 인터뷰와 강의 자료도 찾아봤다. 새롭게 본 브랜드가 마음에 들면 인스타그램을 찾아가 팔로우를 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불편하다- 느껴지는 건 사소한 거라도 모두 메모장에 적었다. 여행 마지막 도시였던 요르단 와디럼에서까지 적었다.

기존에 운영하는 뉴스레터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사업화를 고려한 기획서도 작성했다(실제로 뉴스레터는 여행 중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개편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여행하면서 별 걸 다 했다 싶을 정도로 사부작사부작 노력했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들을 주웠던 시간이었다.


보고 싶은 것들을 실컷 누린 꿈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계획한 코스지만 (해)본 것들이라는 게 비현실적이다.

말 하늘에서 뛰어내릴지

등불축제를 보게 될지

뉴욕에서 인솔자로 일해보게 될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게 될지

중동을 가볼지

유럽의 끝을 가볼지

해외 축구 직관을 하게 될지 몰랐다.

버킷리스트가 수십 가지였는데 그걸 한 번에 모두 이룬 기분이다. 이렇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이뤄도 되는 건가? 여행하면서 참 감사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 갔으면 질려서라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구탐험대 일원이 됐다.

다음번에 또 한 번 장기여행을 실행에 옮긴다면 대륙별 여행을 하고 싶다. 중동여행 남미여행 미서부여행 이런 식으로 한 대륙 안에서 여러 나라를 걸어보고 싶다. 대륙 하나만 여행하면 적응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고 테마도 더 명확해 또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러 대륙을 쏘다니는 건 못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동에 대한 피로도가 계속 쌓였다. 돈이 다 떨어지지 않았어도 그 이유 때문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체력적으로 이제 더 이상 돈을 아끼느라 힘들게 이동하는 건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 초반 때처럼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것도 2/3 지점부터는 할 수 없었다. 오후 3시가 되면 걸을 때마다 왼쪽 허벅지 앞 근육에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름 여행 체력 하나는 평균 이상이라 자부하는데 그럼에도 반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하는 건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세계여행자들은 대체로 중간에 3일씩은 돌아다니지 않고 쉬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거라고.... 세계여행이 처음이라 의욕이 과다했다. 매일 2~3만보를 걸었다.

다음번에 장기여행을 할 기회가 있다면 쉬엄쉬엄 그리고 전체 기간을 줄여 하나의 대륙만 여행하고 돌아오는 여행을 하고 싶다. 아 물론 아주 나중 일이다. 지금은.... 집이 최고다.


여행한 시간만큼 세계여행의 문을 닫는 과정도 길어지고 있다. 아직 요르단에서 찍은 사진도 편집하지 못했고 블로그에 글도 올려야 하고 카메라는 A/S센터에서 수리 중이다. 어제는 출국했던 때와 계절이 달라 옷장 정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직도 해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에 남은 2024년의 상반기가 지나갈 것 같다. 금방 연말이겠는데?

각 도시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자칭 인생 2막을 유의미한 그리고 뿌듯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힘들다-힘들다-했던 세계여행도 해냈는데 뭔들 못해~!

스카이다이빙을 해낸 호주
디즈니 <라푼젤>을 실제로 마주했던 태국
해리포터 덕후의 꿈을 이룬 스페인
유럽의 끝을 직접 봤던 포르투갈
인생 작품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던 미국
말로만 듣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봤던 캐나다
이렇게 수북이 쌓인 눈은 처음이라며 눈알을 열심히 굴렸던 스위스
핑크빛 일몰과 미키와의 만남이 황홀했던 프랑스
지금까지 본 유럽과는 사뭇 다른 세상, 벨기에
토트넘 쏘니의 골을 영접한 영국
걷는 재미가 가득했던 이탈리아
가족을 꼭 데리고 오고 싶었던 나라에서 진짜 가족과 재회하다, 크로아티아
기로스 먹으러 반드시 또 오겠다고 다짐한 그리스
인생 첫 중동 여행이었던 요르단
유럽보다는 중동같았던 신비로운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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