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
지각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지질'이라니. 내 인생에 지질이라니. 차라리 치질이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질이라는 단어 자체는 33년 인생 내내 생소했다. 내가 입 밖으로 지질이라는 단어를 내뱉어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주변에도 지질학도나 업계 관계자가 없다.
그런 와중에 여행작가 자격으로 동해안 지질원정대 팸투어를 다녀오게 됐다. 경주부터 포항 영덕 울진까지 네 지역의 지질 명소를 탐방하는 3박 4일 취재에 참여하게 된 거다. 명소를 탐방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지질 명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연 그대로의 '돌'을 테마로 한 투어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때의 호기심을 캐리어에 넣고 동이 트기 전 캄캄한 새벽 버스에 올라탔다.
경주 골굴암은 템플스테이 때문에 이름만 알고 있는 곳이었다. 템플스테이에 한창 꽂혀 있을 때 여덟 번의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는데 그때 사찰을 고르면서 골굴암을 알게 됐다. 물론 안다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사찰'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꽤 가파른 오르막길과 돌계단을 오르면 다다르는 마애여래좌상과 원효대사 열반굴. 어떻게 이 높은 암벽에 사람이 올랐을까, 믿음의 크기와 농도가 만든 결과물도 놀라웠지만, 바위산이 어떤 암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설명을 듣는 상황이 더 놀라웠다. 태어나서 바위산이 어떤 돌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던 적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응회암'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머릿속에 쌓았다. 이름이 워낙 특이하게 받아들여져서 까먹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생각하며 누군가 쌓아놓은 소원의 돌탑처럼 단어 하나를 얹었다.
2024년 10월에 처음으로 경주의 바다를 봤다. 매번 불국사와 황리단길 일대만 여행하다가 취재 덕분에 처음으로 경주 바다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했는데 약 1년 뒤, 두 번째로 경주 바다를 만났다.
알고 보니 이미 명소였던 '양남 주상절리'는 위로 솟은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가 자유로운 모습으로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음식으로 치면 모둠 메뉴인 셈이다. 이렇게 여러 형태의 주상절리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은 전 세계를 두고도 흔치 않다는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에 이전보다 목을 앞으로 빼고 진검정색 주상절리를 바라봤다. 숫자 8을 옆으로 눕힌 것 같은 모양으로 모여 있는 주상절리 모둠세트는 장관이었다. 떡꼬치에 꽂혀 있는 떡들을 연상케 하는 모양의 바위들이 서로 붙어 있는 듯 제멋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어쩐지 귀엽게 보였다. 주상절리를 먹기 아까운 모습의 음식을 볼 때처럼 귀하게 느껴져 사진을 연신 찍었다. 사진에 오롯이 신비로움이 다 담기지 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새로운 대자연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숯검댕이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했다. 주상절리를 캐릭터화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상상으로 주상절리에 눈코잎을 붙여줬다.
세계여행을 했던 시간 동안에도 이런 풍경은 보지 못했는데. 가까이 있는 것들에도 촘촘하게 관심을 기울이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장관이었다. 경주의 새로운 면을 주웠다.
포항도 개인적으로 여행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구룡포 등 익숙한 장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새로운 장소를 하나 더 알게 됐다. 이름이 응회암만큼이나 신기했던 '흰디기' 해안이다.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흰디기는 '흰색을 띠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의 광물과 가벼운 원소가 많이 함유된 암석들이 해안가에 있다.
비치코밍(해안가 쓰레기를 줍는 행위)을 하면서 만져보고 유심히 봤던 울퉁불퉁 바위에서는 지구가 살아온 세월의 일부가 보였다. 마그마가 폭발하듯이 밖으로 나와 땅 위에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 과정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신기한 모습인 거다. 이렇게나 하얗게 바랜 암석이라니. 그림을 그릴 때도 돌에 이런 밝은 회색을 칠한 적은 없었다. '돌은 이 색이지' 정해둔 몇 가지 후보를 과감하게 벗어나는 흰색에 가까운 회색의 해안가는 아이슬란드에 있는 검은 해변만큼이나 이색적이었다.
밝은 색의 해안 절벽 모양은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 바위를 닮았다. 찾아보니 코끼리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제멋대로 포항의 코끼리 바위로 별칭을 주기로 한다. 미술 작품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내놓는데 그보다 더 위대한 작품인 대자연에 대한 감상도 자유롭게 해도 되지 않을까.
'미술관에서 이렇게 작품을 훼손하면 바로 집안 기둥 뽑히는 건데' 아쉬워하며 주운 쓰레기를 대형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일출은 여전히 본 적이 없지만 벌써 세 번째 방문한 호미곶에서는 상생의 손이 반가워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었다. 익숙한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있다. 그 기분을 좋아해서 가끔은 그 기분을 목적으로 갔던 여행지를 또 가기도 하는데 같은 계절에 재회한 호미곶의 파도는 여전히 거침없었다. 누아르 액션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가. 행동의 크기가 큰 바다가 마음에 든다.
다시 찾아온 나를 환영하고 있는 거라 제멋대로 짐작하면서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가는 짙은 검은색의 바위들을 들여다봤다. 호미곶 일대를 걸으면서 해안 모양에 집중하면 지형이 계단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데 이를 해안단구라 부른다(고 한다. 아, 해안단구가 이런 거였지, 내 머릿속 지구과학 교과서를 성인이 되고 처음 꺼냈다). 해안단구는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안선이 반복해서 높아지면서 계단 모양이 된 것을 말한다. 해안가에 있는 암석들은 모두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공통점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 시간이었다. 어떤 기후던 순응하면서 시간을 쌓는 돌들의 현재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통제하고 싶어도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 생각해보게 했다. 완벽주의자에 통제 욕구가 큰 사람이라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곧잘 받는데 또 그걸 묵묵히 쌓아두는 또 하나의 돌이다. 번아웃이 자주 오는 돌. 그렇지만 좋아하는 게 많아 회복탄력성도 굉장히 좋은 돌.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는 돌이다.
호미곶만큼이나 파도가 장관이었던 영덕 해맞이공원. 영덕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아는 바가 없었는데 약속할 때 손가락을 접어 만드는 모양의 일명 '약속바위'가 재치 있는 여행지였다. 지질학적인 내용보다 억지스럽지 않은 별칭이 더 인상적이었던 곳이었다. 흰디기에서 코끼리 바위를 붙여줄 때처럼 으레 사람은 구름이나 바위 등을 보면서 비슷한 모양을 찾아 새롭게 칭하는 게 습관에 가까운데 사실 가끔은 억지스러운 게 사실이다. 생김새 때문에 별명을 붙은 바위들을 찾아가면 어색한 표정으로 공감할 때가 있다. 아니면 주객전도로 별명을 바위에 끼워 맞추거나. 그런데 약속바위는 정말 약속 그 자체였다. 바위에 어떻게 이런 양각이 생긴 것인지. 한편으로는 약속바위를 발견한 것도 신기했다. 이 거센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가에서 이런 바위를 발견하고 약속바위라고 소문까지 내다니. 요르단 페트라에서 알카즈네 신전을 발견한 사람만큼이나 대단한 탐험가라고 동그란 입 모양으로 바위의 모양을 유심히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만한 약속바위부터 생명력 넘치는 바다와 헷갈리지 않는 트레킹 코스까지. 영덕 해맞이공원은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약속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대장정의 마침표는 울진에서 찍었다. 영덕처럼 처음이었던 울진에서 인생 동굴을 찾았다. 동굴 내부에 볼거리가 가득하고 왕복했을 때의 코스 길이가 적당해 딱 즐길 수 있을 정도의 탐방을 할 수 있는 성류굴에 반했다. 해외에서도 동굴을 많이 가봤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보다 금방 심드렁해졌다. 들어갔으면 나와야 한다는 맹목적인 직진 의식이 내부에 흥미를 가질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때문에 무엇을 흥미롭게 봐야 할지 잘 모르겠는 태도를 취하다가 바깥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그런데 충분한 자극을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성류굴에서는 동굴 탐방의 재미를 걷는 내내 느꼈다. 위에서 아래에서 종유석과 석순이 빼곡하게 자라난 동굴은 영화 촬영지만큼이나 기이했다. 여기에 동굴 안에 흐르는 물과 그 속에 사는 물고기는 신비로움까지 더한다. 어디서 박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실제로 박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허리를 숙였다가 아예 기어갔다가 우당탕와당탕 동선을 지키는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았고 그 어느 것도 중복되는 것 같지 않았다. 도파민이 터지는 동굴이랄까. 놀이공원에서도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찾아 타고, 때리고 부수는 장르물을 좋아하는 자극점이 높은 여행자에게 성류굴은 잘 맞는 놀이터였다. 여행자 기준으로도 자극추구형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 와중에 종유석 등의 모양에도 별칭을 붙여 놓은 안내판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적어도 한국인은 별칭 붙이는 DNA가 필수로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네 개의 도시를 여행하며 지질을 생각했다. 단순히 돌의 형태나 지층의 무늬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결을 볼 수 있었다. 지구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풍경을 만들었듯 나 또한 그렇게 경험을 쌓아왔고 지금도 쌓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여행을 다니며 무심코 주워 담은 감정과 장면들이 언젠가 내 안의 영감으로 다시 자라날 거라는 믿음도 포함된 사실이다.
지질의 두 번째 사전적 정의는 ‘토지의 연대’다. 그 뜻이 묘하게 마음에 남는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견디며 차곡차곡 쌓인 흔적, 1분 1초의 변화에 순응하며 만들어진 총집합.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취재였지만 ‘여행’이라 부르기에 충분했고, 여행이라고 부르기엔 배운 것이 많다. 돌이 쌓여 절벽을 이루고 대자연이라 느낄만한 절경을 만들듯이 경험이 쌓여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겹겹이 쌓을수록 멋스러워지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