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판단을 흐린다

by 페테르

투자라는 이름의 도박

부러움, 질투, 사회적 비교,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은 우리가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깊은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내가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투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주식 투자는 언제든 투기적인 성격으로 흐를 수 있고, 중독의 위험도 크다.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버튼 몇 번만 누르면 큰돈을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자칫 도박처럼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 겉으로는 투자처럼 보이지만, 점점 확률과 운에 기대는 방식으로 빠져들게 된다. 도박이 위험한 이유는 모든 것을 운에 맡긴 채 돈을 베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에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이성적인 판단은 점점 흐려진다. 사람들은 손실을 극도로 싫어한다. 우리의 손실회피 본능은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을 얻었을 때보다 손실을 입었을 때 2~3배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돈을 잃으면 손해 본 금액을 만회하려고 무리한 행동을 한다. "운이 없었을 뿐이야"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다음 번엔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큰돈을 걸어 한 번에 원금을 회복하려 하지만, 오히려 더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다.

설령 운 좋게 원금을 회복하더라도 쉽게 멈추지 못한다. 보상 회로가 자극되어 이미 중독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운과 확률에 베팅하는 사람들은 흔히 승률이 반반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공정한 게임처럼 보여도 도박장이나 증권사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구조를 설계해 둔다. 장기적으로 게임을 반복할수록 운영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다.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은 거래 수수료와 대출 이자다. 투자자가 거래를 자주 하거나 신용거래에 의존할수록 증권사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친구의 성공은 나의 실패가 아니다

질투와 비교심리는 단순한 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상대를 응징하고 싶어진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실험이 있다. 두 명이 참여하는 이 게임에서 한 명은 제안자, 다른 한 명은 응답자가 된다. 제안자는 일정 금액을 받은 후, 이를 어떻게 나눌지 응답자에게 제안한다. 응답자는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데, 수락하면 제안대로 분배되고, 거절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이론상으로는 제안자가 99%를 가져가고 1%만 줘도, 어쨌든 공짜 돈이니 수락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달랐다. 응답자는 자신에게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20%만 받아도 거부하는 사례가 잦았다. 이 실험은 인간이 단순히 금전적 이익만을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상대가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고 느낄 때,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응징하고 싶어한다. 타인이 더 많은 것을 가졌다고 느끼면 비교심과 박탈감이 작동하고,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보복 심리가 움직인다. 서로를 비교하는 심리와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인간 행동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더 많이 가져갔다고 해서 내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손해를 본 것이 아님에도, 상대방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갔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마치 상대가 내 몫을 빼앗아 간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타인의 성취와 성공이 곧 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의 성공은 나의 실패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의사결정이 쌓여 만들어진다. 좋은 의사결정이 많으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좋지 않은 의사결정이 많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주식 투자는 나의 의사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낳는다. 매수할지, 매도할지, 보유할지, 일부를 줄일지, 혹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을지—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질투심이라는 불쾌한 감정

시장에는 탐욕과 공포라는 강력한 감정이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미묘하고, 미처 인식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바로 '질투심'이다. 이 감정은 은밀하게 우리의 판단을 흔든다.

질투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어둡게 하고, 때로는 파멸로 이끈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하지 못한 주식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면 불쾌함을 느낀다. 질투심을 통제하지 못하면 상승하는 종목을 바라보며 버티기 어려워진다. 친구나 가족이 주식 시장에서 큰 이익을 내더라도, 마음 한구석은 기쁘기보다 허전하고 불편하다. 자신도 그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온다. 남의 성공을 보며 불안해지고, 조급해진다. 타인의 성과가 곧 나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왜곡된 사고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어떤 종목이 하락하는 것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인정하기 어려운 불쾌한 본능이다.


나는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가

이런 비교 심리는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단기 수익에만 집착하게 만든다. 강한 질투와 시기심은 결국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로 이어지며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한다. 감정에 휘둘린 투자는 일관성을 잃고, 크고 작은 실수로 이어지기 쉽다.

성경 속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물이 받아들여진 것을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기보다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한다. 결국 그는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평생을 방황하게 되고만다. 질투라는 감정은 재정적 손실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관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괴롭게 하며,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하도록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 출발점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있다.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지, 왜 조급한지를 묻는 것.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 비교는 우리의 감정을 흐리고,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꿔놓는다. 그 덫을 벗어나야 비로소 자기만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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