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종착지
탐욕, 질투심, 부러움은 나를 왜곡된 길로 몰아넣는 감정이다.
내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돈과 화려한 삶이 필요할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걸까?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멈춰서야 하는 건 아닐까?
레프 톨스토이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에 보면 바흠이라는 이름의 농부가 등장한다. 그는 땅에 대한 욕망이 유난히 컸다. 어느 날, 바시키르인들이 넓은 땅을 헐값에 판다는 소식을 듣고 바흠은 그들을 찾아간다. 그들에게 1000루불만 내면 땅을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시키르인들은 바흠에게 하루 동안 마음껏 달려 깃발을 꽂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해가 지기 전까지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야 한다고 조건을 내 건다.
바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다. 무더운 햇볕과 배고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앞만 보고 달리며 깃발을 꽂아나간다. 그러나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에 멈추지 못하고 끝없이 나아간다. 결국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로 돌아오지만, 너무나 지친 바흠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만다. 바흠의 하인이 그의 시신을 묻을 구덩이 팠는데 그 크기는 2m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말을 초래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쉽게 멈추지 못한다. 이카루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늘을 나는 즐거움에 취해,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바닷물에 젖고, 너무 높게 날면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다. 결국 밀랍이 녹아 날개는 부서졌고, 그는 바다로 추락해 죽음을 맞는다. 농부 바흠도, 이카루스도 결국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적당함을 잃은 욕망은 언제나 파멸로 이어진다.
욕망은 언제나 더 높은 수익률을 꿈꾸게 만들고, 조급함은 더 큰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우리를 위험한 선택으로 내몬다.
기억은 진실보다 감정에 충실하다
탐욕은 눈을 멀게 하고, 질투는 기억을 왜곡시킨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를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게 만들고,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보다, 놓쳤다고 믿는 것에 더 크게 흔들린다. 내가 살펴봤던 수많은 종목들 중에서 결국 오른 종목만 또렷이 기억을 하며, 마치 애초에 오를 줄 알았던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일어난 사실은 다르다. 기억은 언제나 감정에 충실하지, 진실에 충실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지나치게 과신한다. 일이 벌어진 다음엔 누구나 똑똑해진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잘못된 내용을 사실처럼 기억할 뿐 아니라, 그것이 왜곡된 기억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확신한다.
물론 우리 뇌에는 해마라는 기억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한계를 지닌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기록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외부화하며, 뇌의 부정확함을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력은 정확하지 않다. 어떤 정보를 다시 떠올린다 해도, 그 내용은 종종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어 있거나, 전혀 다르게 바뀌어 있다.
감정 꼬리표가 달린 기억
무엇인가가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분노하게 만들면, 그 경험은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한 순간 느꼈던 놀람과 공포는 수년이 지나도 생생히 떠오르고, 졸업식이나 첫사랑 고백처럼 감정이 벅찼던 순간도 평범한 하루보다 훨씬 또렷이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건이 발생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해마와 편도체에 작용해 그 경험을 더욱 강하고 오래도록 저장하게 만든다. 뇌는 이러한 특정 기억에 신경화학적 꼬리표를 붙인다.
특히 편도체(Amygdala)는 공포,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감정에 휩싸일 때 그 경험은 해마를 통해 더욱 깊게 각인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뇌는 그런 기억을 더욱 강하게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이 개입된 기억은 더 쉽게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나면 돈을 벌기 전의 상태가 어땠는지를 선명히 기억하지 못한다. 돈을 많이 벌수록 씀씀이도 늘어나고 가난했던 시절의 절제된 소비 습관은 금방 잊혀진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주식시장에서 내 종목은 오르지 않는데 다른 종목이 급등하면, 그 종목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 주식을 샀더라면 큰 수익을 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지 않은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내 주식은 안 오르고, 남의 주식만 오를 때 우리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그때 그 주식을 샀어야 했는데… 지금은 두 배가 올랐네." 아쉬워한다. 하지만 실제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를 이상화해서 기억하고, 현재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거의 하지 않은 선택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매수를 고민했던 종목이 모두 주가가 오른 것은 아니다. 망설이다가 매수하지 않은 종목이 급등하면 그 기억은 오래 남지만, 반대로 매수를 고려했던 종목이 하락하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오른 종목만 기억하고, 하락한 종목은 뇌에서 지워버린다. 우리는 감정적 꼬리표가 달린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만, 사실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욕심보다 시기심에 더 많이 움직인다
시장 분위기가 호전되어 상승장이 시작되면, 질투와 부러움은 투자자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기회를 놓쳤다고 느낀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더 늦기 전에 따라잡으려 한다. 그러나 주가는 단기간에 급등과 급락을 반복한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커질수록 무리한 추격 매수로 이어지고, 결국 높은 리스크에 노출된다. 시장에 공포가 사라지고 모두가 환호할 때, 투자자들은 탐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시장은 행복 속에서 죽는다”는 말처럼, 이때가 시장의 정점일 가능성이 크다. 현명한 사람은 처음에 움직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마지막에 뛰어든다. 머릿속이 명료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질투심과 심리적 편향에 빠지면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고, 투자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찰리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사람들은 힘들었던 시절보다 지금 더 불행해 보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세상은 욕심보다 시기심에 더 많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더 가졌다는 이유로 불행을 느낍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시기심은 인간 본성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