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지편집위원회 목화 웹진 ] - 5월, 광주


교지편집위원회 <목화>는 1년에 한 번 교지를 발간합니다.
그 1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웹진과 카드뉴스를 번갈아 발행합니다.





나의 바다가 넓어져서-




나는 항상 광주가 내 것처럼 여겨졌다.


남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나’를 주변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러니까, 나를 ‘광주’라는 지역에 스며들도록 했다. 그런데 참 모순된 것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나는 광주라는 것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강 작가처럼 어릴 적 광주에 살았던 것도 아니다. 특별히 광주에 추억을 지닌 것도 아니다. 거기서 살긴 커녕 지금껏 방문했던 시간을 모조리 합친대도 2주 남짓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할 테다.



그런데도 내가 광주에 이토록이나 애틋함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내가 광주에 민주주의의 부채감을 느끼는 ‘역사의식이 투철한’(이제는 더 이상 이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학생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혹은 광주에서 대학을 나온 언니와 놀기 위해서 중학생 적부터 퍽 광주를 찾았기 때문일까?



내 기억을 되짚어보자. 중학생 때는 광주에 사는 아는 언니이자 친구가 생겼고, 고등학생 때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펑펑 울었다. 가슴이 푹 젖도록 눈물을 그렇게 흘려댔다. 노크 없이 벌컥 문을 연 엄마가 추하게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를 보고 2초간 당황한 눈빛을 지었던 것이 여전히 뇌리에 잔상처럼 끈덕지게 남아있다.



2025년의 달력과 1980년의 달력은 같다고 한다. 내가 올해 금요일이라는 핑계로 새벽 3시에 눈을 감거나,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나들이를 가는 선택을 1980년의 그들도 했으리라.

오월의 세 번째 일요일을 맞이한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나’들이, 얼마나 서로를 물들여 얼마나 많은 세상을 ‘나’로 삼았나. 그 ‘나’들이 45년을 거슬러 21세기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헤아려야 하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원작...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 - 경향신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칭하는 단어는 많다. 광주에 대한 멸시적이고 왜곡된 시선을 담은 ‘광주사태’, 민중에 대해 초점을 맞춘 ‘5.18광주민중항쟁’, 혹은 ‘광주항쟁’•’5.18 항쟁’, ‘광주학살사태’ 등 다양한 용어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최대한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통일하여 칭하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전두환이 이끄는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필두로 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독재를 위한 단초를 쌓으며 휘두른 국가폭력에 대해 광주•전남 일대에서 저항하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자세한 전개에 대하여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역사넷의 링크를 첨부한다.(우리역사넷) 그 세세한 다각도의 함의를 단번에 아는 일은 어렵지만, 당시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긴 일이 아니다. 1979년 박정희가 피살되고 사회가 혼란기로 다시금 접어들었을 무렵, 전두환을 필두로 한 군 내 사조직 ‘하나회’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신군부를 수립한다. 이미 박정희의 기나긴 집권과 유신체제 하에서 곪아있던 민주화의 과제가 분출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한 상황 속 다시금 찾아온 쿠데타를 통한 군사 정권의 수립은 계엄이라는 형식으로 시민들에게 그 첫 모습을 보였다.



이에 노동쟁의를 비롯한 여러 목소리들이 거리 곳곳에서 빗발쳤고, 대학생들은 5월 13일부터 캠퍼스를 벗어나 거리에서 계엄령 해제,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5월 15일 서울역에는 10만 명의 대학생이 결집하였는데, 총학생회장단은 더 큰 분란을 빚을까 우려하여 해산을 결정하게 된다. 이를 ‘서울역 회군’이라고 부른다.



한편 신군부는 북한 남침설을 유포하고 대중운동을 사회혼란으로 규정하였다. 12.12 쿠데타 이후 국민들의 반발을 잠재울 명분이 필요했고 민주세력에 대한 ‘강경한 조치’로 ‘국가반란의 폭동’을 유발한 이후 이를 진압하여 집권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그 음모의 희생양이었다.



1980년 2월부터 후방 부대에 시위진압 지침을 전달하고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와 20사단은 사전에 공격적진압훈련인 ‘충정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는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이 우발적 ‘과잉진압’이 아니라 계획적 살육작전임을 보여준다.



군의 사회개입은 대학생 시위가 소강 사태에 접어든 5월 17일 전군(全軍)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구체화되었다. 이 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가 결의되었고, 국무회의는 이를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절차였다. 5월 17일 24시부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새벽 2시 국회는 무력으로 봉쇄되었다. 계엄 확대 이전인 17일 밤부터 전국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 등을 예비검속으로 불법 연행하였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신군부가 직접 사회를 장악하고, 신군부에 저항하는 세력을 ‘적색분자’, ‘불순세력’, ‘폭도’ 등으로 규정하는 조치였다.

‘서울역 회군’이라는 허무한 시민들의 무력화와 함께, 신군부라는 국가폭력의 순간 앞에 발한 망설임과 순응 속에서조차 흐지부지된 약속을 끝까지 지킨 곳이 전국에서 단 한 곳이 존재했다. 바로 ‘광주’이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약속을 지켜냈다.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10.jpg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11.jpg
신군부에 의해 검열당한 기사. 검열 이전(왼쪽) 검열 이후(오른쪽)




5월 18일에 발단하여 27일에 마침표를 찍은 10일 남짓의 기간 동안 광주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 국가에 의한 국민들에 대한 학살은 광주에 잊을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평화와 연대, 나아가 인권의 상징이 된 것에는 단순히 시민들의 결의와 항쟁만이 존재하진 않다. 계엄군의 총, 칼, 곤봉에 맞아 쓰러진 자들을 구하려 헌혈하기 위해 병원으로 운집한 길고 긴 시민들의 행렬. 투쟁하는 이들을 위해 헐값으로 먹을 것과 옷가지, 물품들을 나눠준 상인들. 또한 그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고 국수를 나눠주며 투쟁하는 그 열흘의 기반이 되어준 오월의 여성들까지. 끊임없이 평화를 촉구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목소리들, 그 누구도 외면받지 아니하고, 곁의 이들을 보살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목놓아 우는 마음들이 서슬퍼런 총신 앞에서 빛났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광주 사태’, ‘폭도’ 등의 단어로 얼룩지고 왜곡되어온 5.18의 상흔은 그저 ‘집단적 트라우마’로 덧대어 막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상실과 울분, 지연된 애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무망과 비참함, 울분, 말할 수 없음, 침묵의 공모, 단절과 고립, 분노, 공동체 반목, 5.18에 대한 속박, 두려움, 누적된 무력감. 불신과 회피…. 광주가 떠안아야 했던 무거운 짐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통한 민주화의 바람 이후 열린 제5공화국 청문회는 진실은 커녕 전두환의 자기변명과 진실왜곡으로 얼룩졌고, 다시금 발족된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38년 여가 지난 이후인 2018년에야 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지난 세월 광주는 뼈아픈 멸시와 소외, 무관심, 혐오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예컨대 5.18은 ‘폭도’와 ‘간첩’의 소산이라든가, 4.16은 ‘해상 교통사고’는 일방적 정의를 통해 두 사건의 해결책 또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나 의료적인 심리지원의 문제로 환원되어버린다. 즉 ‘참사 이후의 참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해당 사건의 사건성이 부인되고 우연한 사고의 문제로 치환될 때, 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이 감내해야했던 고통 또한 은폐되거나 의료적인 문제로 축소되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인권침해를 야기한 가해자의 책임은 실종되고 거꾸로 피해자는 충분히 보상받은 특권세력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 또한 부정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사회공동체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소외되는 패턴은 한국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탈진실 정치’ 혹은 ‘부인의 정치’의 풍경들이다. (김명희 외 7인, 2022)




광주는 가해자들이 역사를 반목하고 멋대로 규정하는 영남과 호남의 ‘화합’의 상징이 아니다.

광주는 평화이자 투쟁이자 연대의 상징이다. 국가의 부정한 폭력에 대한 범시민적 궐기의 투쟁의 산물이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자, 저항자이자, 동시에 상흔이 남긴 평화와 연대라는 과제 앞에 최일선으로 앞서간 자들이다.

곁에 있는 이가 얼굴 모르는 외딴 존재가 아니라, 너도 나이고, 나는 너라는 것을 인지할 때, 우리의 가슴들은 이리저리 엉키고 매여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이 되는 결속을 만들어낸다.



광주는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마음들이 네 것도 내 것도 구분할 수 없도록 엉겨붙어 밀려들어오는 파도처럼 거리 위의 삶들을 껴안았다.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09.jpg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 특별전 <소년이 온다>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소설가 한강은 자신이 여덟 살 때 적어 넣어 둔 오래된 시 상자를 열었다. 시는 과거와 현재, 나와 너 우리가 귀하게 이어져 있음을 알게 한다. 사랑은 규정될 수 없지만 연결되어 있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다. 서로가 손을 맞잡고도 새어나가는 틈이 못내 애닳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6개의 장, 1개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나’, ‘너’, ‘당신’ 등으로 지칭되는 동호, 정대, 은숙, 교대 복학생과 진수, 선주, 동호의 어머니, 작가가 차례로 등장한다. 작가를 제외하고 이들은 모두 1980년 광주의 5월에 있었다. 소설은 45년전 광주의 참상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얼마가 경과한 시점과 지점들을 다시 잇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광주에 이르는 소년을 마주하게 된다.



소년이 오는 일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온 몸이 뒤틀리고 말라붙는 듯하지만 반드시 그는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생명이 부대끼는 시간을 감내하며 소년은 오고야 만다. 그에게 다가가 묻는다. 왜 그렇게 온 힘을 다하느냐고 말이다. 소년이 대답한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작가가 말했던 그 금실은 1980년 5월에서 지금까지 우리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잇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내게 이어진 그 금실이 이제 너에게로 옮겨간다. 그렇게 오늘, 우리의 광주가 오고 있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주가 겪은 비극의 시간과 공존한 이들은 누구도 정상적인 지금을 영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존엄과 양심을 굳게 지키고자 했던 노력은 누군가의 생각과 태도로 또렷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에 없었던 이들도 새로운 경험자로서 광주의 5월에 서게 되는 것이다.




5.18의 기억을 담은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통해 작가 한강은 2024년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한강 작가를 통한 광주정신의 역사적 확인과 광주항쟁의 45주년을 기하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는 2025년 10월 19일까지 계속되며, 한강 작가가 담아낸 광주의 기억들과, 기록관에 실재로써 증언하는 기록들을 엮어 45년 전 그 곳에서 산발한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구)광주적십자병원 개방 전시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05.jpg



약 10년간 버려진 채 닫혀있던 (구)광주적십자병원이 5.18의 정신을 담은 채로 5월 한 달간 개방 전시를 한다. (구)광주적십자병원은 5.18민주화운동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한 응급치료와 체계적인 구호활동으로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며, 헌혈을 통한 생명의 나눔과 대동정신이 공동체의 힘으로 발휘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같은 연대와 희생의 실천은 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하였다.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03.jpg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02.jpg
KakaoTalk_20250525_153535745_01.jpg





1996년에 서남대병원이 매입을 하여 개원하였고, 2014년에 폐쇄될 때까지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1998년에 5.18사적지 제11호에 지정이 되었으며 2020년 광주광역시가 폐쇄된 병원을 매입한 끝에 2025년 5월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서남대병원으로 사용되면서 1980년 당시가 그대로 보존되진 않았으나, 원형 및 대부분의 모습들은 1980년의 광주적십자병원의 풍경이 여전히 남아있다. 5월 한달 동안만 45년만의 개방전시를 하니, 서둘러 찾아가보는 것이 좋겠다.





KakaoTalk_20250525_153535745.jpg



2025년의 우리에게도 광주 정신이 영원하길.




편집위원 최예인


















현재와 과거를 잇는 작품들






5월이 끝나간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어느 순간에 지금을 체감하게 되면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가 선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누가 이곳에서 살아갔을지, 그들의 삶도 나와 같았을지. 내가 자라난 이 나라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누가 그 역사 속에서 살아있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과거를 되돌릴 방법은 모릅니다. 저는 그저, 조금 더 오래 지금처럼 기억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살아온 일상은 어떠한가요? 그날이 그날 같을 수도, 벅차게 바쁜 삶에 지쳐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경계 속에 있습니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그 선택이 당신에게 잊히지 않을 고통을 줄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 선택을 받아들일 것인가요? 영원히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 다시는 누구도 짓밟히지 않도록, 떠나간 자식들을 위해, 눈앞에 벌어졌던 일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갈림길에서 간절한 선택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먼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입니다. 이 작품은 2016년 출판되어 1980년 광주,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총 6장으로 하여여 각각 다른 인물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1장과 2장에는는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15살 소년 동호와 정대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3장에서는 언론 검열과 탄압 속에서 멍든 뺨을 식혀야 했던 은숙이, 4, 5장에는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마지막 6장에서는 동호의 어머니, 그리고 가족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그들의 삶은 왜 고통으로 물들어야 했는지, 왜 그리도 많은 이들이 죽음과,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지는 절규 같은 삶을 마주해야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알아도 알지 못합니다.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사람으로서, 생명체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5월이 끝나가는 지금 우리의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정비하기 위해, 다시금 그날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기고 싶다면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총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아나? 사람이야.


『소년이 온다』가 광주 시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면, 다음으로는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과 무차별적인 학살의 모습을 담은 영화 <화려한 휴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택시 운전사였던 ‘민우’가 계엄군에게 대항하던 동생 ‘진우’의 죽음을 계기로 시민군과 함께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영화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시민군의 간절함과 계엄군의 비인간성입니다. 시민군의 구성원들은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입니다. 갑작스레 죽음과 생존의 기로에 내몰려 대항해야 했던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간절함을 품고 계엄군과 투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계엄군들은 자신의 가치관보다도 상명하복의 압박과 위계 아래 주어졌던 ‘폭동 진압’이라는 명령을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진압 대상인 ‘폭동’에 대한 기준조차 없이 민간인에게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투쟁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한 시민군과 대비되어 더욱 거부감과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계엄군의 비인간성을 통해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의 참혹함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 <화려한 휴가>였습니다.




2025년의 5월, 조금씩 더위가 다가오는 지금 『소년이 온다』 그리고 <화려한 휴가>를 통해 1980년 5월의 광주를 열기를 느껴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역사 속 그날은 사라지지 않고 곁에 남아있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다시 5월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곳의 모두가가 뼈 시린 그 고통과 슬픔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수습위원 김윤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