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국문과를 졸업하고 잡지사에 들어갔다

by LYR

20여 년 전 성적에 맞춰 국문과에 입학했고

수업으로 소설, 시, 희곡 등등을 공부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결코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해 룰루랄라 마냥 좋아하던 나에게

한 선배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어 보라고 권했다.


열 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었지만 읽은 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만큼 재밌었다.

글을 쓰는 대단한 일을 하는 작가가 난생처음으로 존경스러웠고

저 정도는 돼야 작가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노동운동, 여성운동, 사회운동... 이런 건 잘 몰랐다.


태백산맥을 읽어보라는 선배,

그 선배가 운동하다 다리를 다쳤다길래 난 이렇게 물었다.

무슨 운동이요? 농구요? 축구요?


그 선배는 데모 선봉장이었다.

내가 입학할 때쯤은 데모는 거의 끝물이라

데모를 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고 운동이라는 용어도 몰랐기에

그렇게 어이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과가 국문과이다 보니 교수님은 두 분이나 시인이셨고

시인에게 수업도 받았고 그중 한 분은 나의 결혼식 주례도 봐주셨다.


아무튼 국문과라 많은 문학과 관련된 사람들,

친구, 선배들과 20대 초반을 보냈다.


뜻이 있어 국문학과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글 쓰는 사람들이 가진 사색과 고민, 시선, 습작, 다독.

그런 습관이 나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세상물정 잘 모르지만 학교 생활은 재밌게, 열심히 하는 딱 그 정도의 아이였다.


졸업반이 되면서 무얼 하고 싶은지 진로를 고민했다.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으니 임용고시를 치고 국어선생님을 할까?'

'교사'라는 그 따분함이 싫었고 임용고시 공부는 더욱 싫었다.

4학년 1학기 교생실습은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었다.


글재주도 없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졸업할 때 즈음 어찌하다 보니 잡지사가 가고 싶어졌다.


책 만드는 일이 멋있어 보였고 사람 만나고 취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4학년 겨울 웅진 출판사의 여려 잡지 중 한 곳에서 어시스트를 몇 개월 했다.


그 경력으로 얼마 후 잡지사 취재기자로

글을 쓰는 나의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글은 안 써봤는데 글을 써야 한다니....

그제야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