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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Breasts Aug 11. 2024

9. 허툰기대 그리고 인생 첫 암환자 등록

part2 – 불행 n단 콤보의 서막 : 예상치 못한 불행의 연속. 

피자를 두 가지로 조합하고, 거기에 2단 박스 혹은 3단 박스로 다른 메뉴를 추가한 3단 콤보 세트 같은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 “종합선물세트”라고 하여 여러 가지 과자를 한 박스에 넣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판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주 종목이 없이 여러 가지가 다양하다면 피자 3단 세트 같은 건, 피자라는 주 종목에 곁들여 이것저것 더 추가하여 메뉴 구성이 풍성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불행도 한 개가 아니라, 암이라는 주 종목 불행에 여러 옵션들이 있다는 것을 마주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내 인생의 첫 암 환자 등록, 어쨌든 내 인생의 처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도착한 접수창구에서는 아직 초진을 보지도 않았는데 나의 조직검사결과지로 “중증환자등록”을 해 주었다. 슬프고 고마웠다. 암 환자가 되어 중증환자로 등록이 되면 여러 의료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암 환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직도 처음 해 봐야 할 것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까? 암 환자 등록 같은 것 말고...



허툰기대


2023년 5월 30일, 오전 9시 25분 첫 진료. 퇴사를 4월 30일에 했고 병원 예약을 4월 28일 즈음 했으니 거의 한 달을 넘게 기다려 드디어 이한별 교수를 만나는 날이 왔다. 이한별 교수로 택하게 된 이유는 회사 선배가 내가 진단 받기 일 년 여 전쯤 0기 유방암 수술을 받았었고 그래서 조금 더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경. 유방외과 앞엔 오전 8시 10분 경 도착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마음의 준비를 하였고, 처음부터 0기라는 조직검사결과지를 들고 있었지만 어떤 예상 밖의 말이 나올지 몰라 전 날 밤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 옆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둘 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예약 시간보다도 한참 전에 서울대학교 병원에 도착하여 텅 빈 진료 대기실 앞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8시 40분이 넘어가니 비어 있던 진료 대기실은 점점 사람이 많아져서 나중엔 앉을 자리가 없어졌다. 여기가 메이저 병원인 이유도 있겠지만, 유방암 환자가 많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기다림의 떨림을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것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도 아니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인을 만나기 직전의 떨림, 설렘과는 전혀 다르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줄을 서서 맞던 주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오히려 가까울 것인가? 주사는 기대치라는 것이 없으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까봐 겁이 났지만, 예상하지 못한 희망의 생기지는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두 가지 마음이 같이 생겨나고 부딪히기고 무한 반복이었다. 


 앉아서 대기하면서 환자일지도 모르거나 보호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미 모든 일들을 겪어 낸 분들에게는 경외심과 부러움을 나처럼 조직검사 결과지를 들고 온 젊은 초진환자에게는 동질감을 느꼈다. 당신도 이제 시작이군요. 우리 같이 잘 해 봅시다라고 손을 잡고 말 해 주고 싶었다.    

  

 내 순서가 가까워지자 심장은 방망이질을 쳐 대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변할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큰 변화를 빠른 시간에 감당한 나로서는 이성적이지 못했고 매우 감정적이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지웠다하기도 하였으며 결국은 오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가 나중에는 이 모든 일들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그러나, 내 손을 꼬집어보니 손이 매섭게 아프다. 


 병실은 들어가면 중간에 문이 하나 있어서 교수님이 왔다 갔다 하시면서 진료를 보게 되어 있다. 환자가 워낙 많기도 하니 여러 효율성을 따져서 방을 두 개로 나눈 것 같았다. 두 명의 환자를 보기에는 그 방법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간호사가 침대 위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곧 옆 진료실에서 교수님이 내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교수님은 나의 작은 혹이 있는 위치를 찾으시고 차트와 비교를 해 보셨다. 나의 작은 혹은 교수님 손에 만져졌고 교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조직 검사 결과상은 상피내암이고 만져진 혹이 만약 그 자리에 국한 되어 있다면, 그러니까 위치가 딱 거기에만 있고 퍼져 있는 모양이 아니라면 전신마취 수술이 아닌 부분마취로 소수술실에서 제거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내 머리 위에 있었던 먹구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밝은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하지만 자세한 것은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하셨다.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진료가 끝난 줄 알고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결국엔 하셨다.     


“그런데, 왜 왼쪽 가슴은 검사를 안 하셨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교수님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은 유방 MRI를 한 번 찍어 보도록 하죠. 거기서 좌측 유방이 평온하지 않으면

 별도로 조직검사 날짜를 잡아서 통보 할게요.”     

“그럼, 유방 MRI 찍고서 좌측 유방에 문제가 없으면 조직 검사는 안 하는 건가요?”   

  

 교수님은 그렇다고 하셨고, MRI 날짜를 잡았다. 며칠 후의 토요일 오후였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오진이기를 꿈꿨던 나는 진료 중에는 운이 좋을 경우 부분 마취에 부분 절제만 할 수 있을 가능성을 듣고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가 갑자기 왼쪽 유방은 왜 조직검사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다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진이나 암으로 의심되는 정도 같은 가능성은 전혀 없는 그냥 암이었다. 


바보, 머저리 같은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게 생각 되었다.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정이 타서 왼쪽 유방까지 잘못 된 것은 아니겠지? 제정신이 아닌 생각들이 또 다시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서툰 기대 말고 허툰 기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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