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자금팀이 들어닥친 날

클로징 후, 화장실에서 마주한 뼈아픈 사실

by O Dan o

그날 아침 9시,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준비하던 사무실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인수기업의 자금팀이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다.


정장을 입은 그들의 걸음걸이와 단호한 표정은, 우리가 일궈온 익숙한 공간에 낯선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가벼운 인사가 오갔지만, 그들의 질문은 지체 없이 '돈의 흐름'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금 이체 기준은 무엇입니까?"

"내부 프로세스와 전결 규정은 어떻게 됩니까?"

"이체 리스트 작성자와 검증자는 각각 누구입니까? 주거래 은행의 권한 관리는 어떻게 분리되어 있습니까?"


순간, 흠칫 놀랐다. '오자마자 돈줄부터 틀어쥐고 통제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애써 경계하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당시 임원이 아닌 '부장' 직급이었지만, 자금뿐만 아니라 경영 총괄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비록 대기업이 요구하는 거창하고 체계적인 매뉴얼은 없었을지언정,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푼의 오차도 없이 누구보다 투명하고 당당하게 회사의 자금을 지켜왔다는 굳건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우리가 일해 온 방식 그대로를 솔직하게 모두 내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이 깊어질수록, 그날 하루는 몹시 막막하고 숨이 막혀왔다.


그동안 나의 1순위는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자금을 '실수 없이, 신속하게' 집행하는 것이었다. 10명 남짓에서 시작한 중소기업이 거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재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속도와 효율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대기업의 잣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숫자의 정확성 너머를 보았다. 정합성, 자금 집행의 명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상호 견제, 그리고 철저히 분리된 업무 분장과 프로세스라는 차가운 현미경으로 나의 지난 업무들을 낱낱이 해부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아니 당장의 생존이 급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던 세계였다.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일해 온 것인가? 나의 헌신이 오히려 회사의 시스템화를 가로막은 걸까?' 하는 뼈아픈 의구심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내 그들은 연간 자금 수지 계획을 요구했다. 수입란에는 현금 수금과 프로젝트 잔금을, 지출란에는 운영자금, 성과급, 급여, 부가세, 법인세를 채워 넣어야 했다. 투자 및 재무 활동에는 시설 투자, 개발비, 신규 차입과 차입금 상환 내역까지 포함되었다.


실무를 꿰뚫고 있었기에 묵묵히 숫자를 채워 제출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낯선 포맷과 기준들은 나를 끊임없이 위축시켰다.


이어지는 통보는 단호했다.

"안정적인 시스템 안착을 위해 필수적인 지출 외의 자금 집행을 잠시 멈추고자 합니다. 현금 이체 기준과 전결 규정을 명확히 다듬도록 도와드리는 과정입니다."


나는 그 모든 요구를 수용했다. 겉으로는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당혹감과 혼란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에게는 철저히 내 감정을 배제한 채 건조한 팩트와 진행 상황만을 보고했다.


실무 총괄 책임자인 나의 흔들리는 감정이 갓 M&A를 겪은 조직 전체에 불필요한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혼란과 충격의 무게는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보고를 마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순간, 시야가 뜨겁게 흐려졌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전문가인 척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무력감과 알 수 없는 상실감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대표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애착 있게 회사를 챙겼다. 성공적인 인수합병을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오랜 시간 회사의 성장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그 모든 헌신과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프로세스 부재'라는 대기업의 차가운 평가표 앞에서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5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차가운 화장실 타일 벽을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진다.


오늘, 그날로부터 딱 5년이 지났다.


그때의 나는 직급은 부장이었지만 회사의 경영 총괄을 맡아 아래 직원 단 한 명을 두고 전쟁 치르듯 일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져야 했기에, 역설적으로 프로세스의 빈틈이나 리스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회사는 다르다. 자금 관리 담당자가 꼼꼼히 내역을 살피고, 회계 관리 팀장이 크로스 체크를 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견고한 체계를 굴려가고 있다. 이체 리스트의 정합성 검증, 상호 견제가 가능한 명확한 업무 분장, 깐깐한 결재 절차는 이제 우리 조직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매일의 자금 흐름은 투명하게 통제되고, 누군가의 작은 실수도 시스템이라는 튼튼한 거름망 안에서 안전하게 걸러진다.


돌이켜 보면, 그날 나는 '중소기업은 원래 이렇다'며 인력 부족과 환경을 탓하는 변명 뒤로 숨지 않았다. 도망치는 대신 그 버겁고 낯선 현실에 기꺼이 맞서는 길을 택했다.


당시 대기업의 냉혹한 관리 방법론은 당시의 나를 밑바닥까지 거세게 흔들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회사의 자금 시스템은 이제 누구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게 작동한다. 그게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