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일단, 경계한다. 혹시 몰라서.

하지만 목표는 같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by 수진 ㅣ 교육자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광경을 모두가, 여러 번 지켜봤다.이로 인해

선한 학부모는 교사에게 연락 한 통을 남길 때도 몇 번씩 고민하고, 검열한다. 연락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선한 학생은 교사가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선생님이 안쓰럽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침묵한다. 쉬쉬한다.

선한 교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단단한 보호벽을 만들어 두껍게, 점점 두껍게 주변을 두른다. 무엇이든 일단, 경계한다.


결국 모두가 불쌍해졌다.

소수의 원인제공자들을 제대로 벌하지 않고, 대책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나 참혹하다.


교사들은 광장에 몇 번이나 모였다. 교사를 보호해 달라는 목소리로 비추어졌겠지만, 사실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거리로 나왔다는 걸 모르는 교사는 없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를 제대로 벌하지 않은 결과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절박한 심정으로 알린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실 것을 간절히 청한다.


나는 범죄 피해로 작년부터 병가를 오랜 기간 썼다. 교사를 타겟으로 한 범죄였다. 그동안 우리 반은 담임교사 없이 수업했고 심지어 졸업했다. 졸업장도 건네주지 못했고 따뜻한 눈빛으로 수고했다는 한 마디조차 해주지 못했다. 그때 난 지옥으로 침잠하면서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생각했다. 미안했다.


문제아 한 명은 교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담임교사가 여러 번 바뀌면 그만큼 학생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선생님에게 적응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진도를 따라가기도 급해져서 수업로봇처럼 행동한다. 문제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고문이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매일같이 보면서도 수업에 집중하라는 말이 들릴까? 그리고 그렇게 될까? 공포에 떨며 등교하거나 두려운 마음을 안고 교실 문을 여는 아이들을 상상하면 정말 불쌍하다. 문제행동에 무력히 대처하는 선생님을 보는 안쓰러운 눈빛을 마주칠 때는 절망스럽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악성 민원 하나도 교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교사는 비난을 위한 비난, 꼬투리 잡기 위한 꼬투리가 두려워 아무 것도 선뜻 할 수가 없다. 교사로서의 책무를 힘겹게 다하지만 정신적으로 각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전과 같이 안정적으로 교실을 운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주변에 정신과에 다니시는 선생님들을 적지 않게 본다. 한 다리만 건너면 꼭 한 명씩은 있다. 미래를 비관하는 얘기들이 교사 사이에서 자주 오간다. 교직 탈출이 지능순이라는 말은 ‘사회적 경고등’으로 인식해야 할 말이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고 가르치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다 먼 일처럼 느껴진다. 생존의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피라미드는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선생님들께서 교실에서 지금도 버티고 계신 건 다수의 선한 학생과 학부모 덕분이다.

끔찍한 사건들은 개별화할 일이지, 집단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여러 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은 교사를 잘 따르고 수업으로 함께 성장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들로 선생님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님들은 교사에게 묵묵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시고 교육공동체로서 협력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선한 사람들은 더 이상 피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연대하여 모두를 위한 좋은 교실,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또라이 법칙은 불변하기에 언제든 또다른 악인이 등장하겠지만 선한 ‘다수’의 연대를 나는 믿는다. 교사를 물로 보고 농락하는 학생, 무고한 아동학대를 남발하는 학부모, 학생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교사 모두 결과적으로는 소중한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


우리 모두의 목표는 같다.

“아이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달려있다는 건, 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이고, 곧 모두의 생존이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