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꿈, 아니 동그라미의 꿈

오늘의 명언에 담긴 마음은 둥그렇게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다.

by 수진 ㅣ 교육자

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줄곧 좋아했다.


고등학교 땐 진짜 ’네모의 꿈‘ 노래 가사처럼 살았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컴퓨터 스마트폰.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그냥그냥 공부만 했다.


때론 심심했다. 야자 시간이었다. 주변을 슬쩍 보니 친구들도 확실히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나는 재밌는 일을 벌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모범생스러웠던 것.. 나는 그날부터 칠판 한쪽에 ’오늘의 명언‘을 쓰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은 생각보다 좋아했다. 내가 써놓은 명언을 공책 한쪽에 적어두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명언은 ‘사과 안에 들어 있는 씨는 셀 수 있지만, 씨 안에 들어 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인데, 사유 : 애들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무슨 뜻이냐면 사과처럼 겉으로 보이는 건 셀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은 셀 수 없다는 거야. 봐봐 씨 하나에 사과가 몇 개나 열릴지 알 수 없지? 우리도 똑같아. 우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지금 공부하는 거라구! 하며 설명하다 보면 애들은 뭐래~ 하고 다같이 웃고 말았지만 나는 그렇게 애들이 잠깐씩, 한 번씩 생각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하고 마냥 좋았다.


나는 대외활동을 자주 하면서 자소서도 그만큼 많이 썼다. 첫머리에 꼭 쓰는 문장도 명언이었다. ’사람은 자기 그릇의 크기만큼 사람을 본다‘ 기숙학원 원장님 노트 위에 적혀있던 말이었다 ㅋㅋㅋㅋㅋ 원장님과 그 말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고, 내가 그냥 슬쩍 보게 된 게 계기가 되었지만 그 명언은 두고두고 내 삶에 자국을 남기고 있다.


명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른다. 그런데 힘이 있다는 건 확실히 안다. 나는 예전의 내가 했던 것처럼 칠판 한 구석에 ’오늘의 명언‘이라는 모퉁이를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모퉁이를 채우고, 또 채우고,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의미 있게 채워주고 있다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면 네모난 것들 뿐이다. 네모난 것들을 모두 박박 깎고 사포질 해 하루아침에 맨들한 동그라미로 만들 순 없다. 그런데 이 글의 마지막 명언은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네모난 것들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말하지만,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명언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둥그렇게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동그라미의 꿈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서로를 일단, 경계한다. 혹시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