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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이 Jan 02. 2024

S아파트 할머니



 아버지의 가게ㅡ다육이 비닐하우스ㅡ에서 일을 하고 있을 재작년 여름, 꽃봉오리가 특히 많았던 비화옥과 붉그스름한 주황색 꽃이 핀 백단 선인장을 사 가셨던, 더운 날 힘든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오셨던 손님이었다. 검정 봉투에 담겨 왔던 어르신의 화분에 신중히 골라오신 선인장들을 분갈이를 해 드리는 동안 가시가 날카로운 비화옥을 손에 든 나를 왜인지 걱정스레 빤히 보시는 어르신께 이렇게 가시가 두꺼운 선인장은 저도 두꺼운 장갑 끼고 해요, 라고 어색한 미소와 한 마디 건넨 것이 짧은 대화의 시작이었다. 앉아계셨던 어르신은 금방 미소를 띠시더니 약간 찌그러진 미간으로 끄덕거리셨다. 좋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 네, 맞아요 저도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마음이 너무 소녀 같으세요. 아이구, 어디 가서 이러면 주책이라고 해요. 길가만 지나가도 다 예쁘다고 하니까, 그냥 보이는 거 다 예쁘다고 하니까. 나는 그런 어르신께 저는 평생 어르신처럼 사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 했다. 진심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의 예쁜 것을 끊임없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처럼 자라는 것. 나는 무해한 어르신을 통해 그게 꿈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세상에 예쁜 게 참 많아요, 아들 따라갔던 미국이 기억에 남아요, 나는 그때 그게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어요, 젊을 때 여러 곳 많이 다니고 예쁜 거 많이 보고, 정말 세상에 예쁜 게 참 많아.. 어르신은 어느새 앉아계셨던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카운터에 바짝 붙이고 말씀하시고 계셨다. 어르신과 가까이 대화하며, 나는 처음으로 우리들이 마스크를 쓰며 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마스크 너머의 어르신의 표정을 온전히 보고 싶었다. 마치 놀이공원에 간 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하우스를 둘러보며 심어진 화분을 소중히 넣고 행복해하시는 백발의 어르신이 나는 좋았다.


*


다음 날, 식물 하나를 더 심고 싶다며 언니 눈에 예쁜 걸로 골라달라는 어르신께 이천 원짜리 제일 예쁜 사랑목을 골라드렸다. 계산을 마치고 봉투를 건네어드리는데, 언니 땅콩잼 좋아해? 라고 물으며 손바닥만 한 크로스백에서 스티로폼에 곱게 포장해 놓은 땅콩잼을 발라놓은 비스킷과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주셨다. 한참 출출할 시간이잖아, 언니가 너무 예뻐서 주고 싶었어, 내가 예쁘게 포장해 왔는데 걸어오면서 다 흩어져버렸어. 어르신은 부끄러운 손으로 내게 건넸다.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언니가 너무 예뻐서 그래 너무 예뻐서.. 라는 말을 하시던 어르신. 언니 나 또 올게! 라는 말과 조금은 버겁게 든 화분이 담긴 봉투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나는 점이 될 때까지 쳐다보며, 가시는 길에 또 얼마나 많은 예쁜 것들에 반짝거리는 마음을 주실 지 상상해 봤다. 그 선명한 생기에 나는 왜 인지 미어지고 무력해져 끌어안고 있는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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