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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Jan 19. 2024

발자국 주인


2023년 12월의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이었다. 가벼운 산책길을 나섰다. 걷다 보니 별안간 눈에 찍힌 발자국이 내 눈에 띄었다.


사람 발자국이 아니네?


까치 발자국이었다. 까치도 눈 위를 밟고 지나가면 까치 발자국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인간만 눈을 밟을 거라는 실처럼 가느다란 생각만 지니고 살았을까. 자연에 대한 무지와 함께 인간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살아온 나를 또 한 번 흔드는 찰나였다.



까치는 길 한가운데가 아닌 사이드로 걸어간 흔적을 남겼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이곳을 총총총 걸어갔을 귀여운 모습을 상상했다. 뿐만 아니라 까치야말로 눈 밟는 소리를 즐겼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까치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다. 자주 본다는 것. 그 생물이 가진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 다나는 말로 바꿀 수가 있으나 대개 자주 보이면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까치 발자국을 보고 나서 바로 코앞에 있는 까치가 보였다. 저 발자국 주인, 너였을까?


지난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까치에게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며 “안녕”을 외쳤던 적 있다. 그 한마디에 까치가 휘릭 날아가버린 뒤로 까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동물 농장에서 산책만 나가면 사람에게 짖는 강아지 편이 나왔는데 그때 강아지 훈련사가 말하기를 지나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인사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역질문이 인상 깊었다. 그렇듯 나도 까치에게 일부러 인사하지 않는다. 인간이 까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공존성 예의 같아서. 대신 나무 위에 앉은 까치의 어우러진 풍경을 잠깐이나마 보는 것에 만족하며 마음을 풍족하게 채운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산다. 그러나 그 자연을 훼손하는 우리들. 어제는 뉴스에서 원앙의 개체수가 작년 대비 800마리 가까이 줄어 이제 2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우리는 변해가는 이 모든 것을 떠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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