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용감한 행위, '이만하면 되었다'
by. 마음 정원사
마음속 정원을 가꾸다 보면, 때로 우리는 지독한 완벽주의의 덫에 빠지곤 합니다.
잡초 하나 없는 잔디밭, 시든 잎사귀 하나 없는 장미 넝쿨, 정확한 간격으로 심어진 튤립. 머릿속에 그려놓은
완벽한 정원의 모습에 사로잡혀, 정작 가꾸는 즐거움은 잊어버린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아직 부족해, 더 완벽해야 해."
이 완벽을 향한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으름'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완벽한 씨앗을 찾을 때까지 씨앗을 심지 못하고,
가장 이상적인 날씨가 올 때까지 물을 주지 못하는 정원사처럼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정원은, 화려한 계획서 속에서만 존재할 뿐, 텅 빈 채로 남게 됩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세상에 똑같은 정원이 없듯, 완벽한 정원이라는 기준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원은 다소 거칠지만 생명력 넘치는 야생의 매력을 뽐내고,
어떤 정원은 아기자기한 들꽃들이 소박한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조금 비뚤게 자란 나무는 새들에게 더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고,
잡초와 함께 핀 민들레는 나비에게 달콤한 꿀을 선물합니다. 우리가 '결점'이라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그 정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이자 생명의 다른 모습일지 모릅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내 정원의 개성과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 안개를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내 정원을 바라봐 주세요.
조금은 서툴고 부족할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당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서 가장 용감한 행위는, 어쩌면 삽을 드는 첫 순간이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말해주는 순간일 겁니다.
오늘 심은 씨앗 하나에 만족하고, 정성껏 물을 준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것.
내일 다시 자라날 잡초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오늘의 작은 변화에 기쁨을 느끼는 것.
정원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으려 애쓰는 대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부드러운 '쉼표'를 심어두는 것.
그 쉼표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숨을 돌리고 정원을 가꾸는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완벽이라는 목적지가 아니라, 가꾸는 과정 그 자체가 선물이 되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 정원은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혹시 완벽한 봄을 기다리느라, 아직 씨앗 하나 심지 못한 꽁꽁 언 겨울은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하지 않은 오늘, 가장 서툰 손길로 당신의 정원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보세요.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을 향해 속삭여주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너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워." 라고.
그 다정한 속삭임이, 당신의 정원을 깨우는 가장 따스한 봄볕이 되어줄 테니까요.
당신의 정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