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하면 피자와 재즈가 생각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시의 이름답게 화려함을 기대했는데 시카고에 막 도착하고 나서는 우중충하고 침울한 기운이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좀 지나니 적응되기 시작했다. 회색빛의 도시에게서 짙은 블루스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블루지한 이 느낌이 왠지 싫지 않았다.
이십 대 후반까지 꽤나 바쁘게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천년만년 젊을 줄 아느냐 돈 벌었을 때 모아야지 하던 어른들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미국행 티켓을 덜컥 사버렸다. 내 꿈은 오래전부터 미국에 가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많은 예술적 영감이 바로 미국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다짐한 것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음악을 계속하면서 살지, 과감하게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지 결정하는 것. 이번 미국여행의 테마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차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판다 익스프레스. 우리나라로 따지면 김밥천국 같은 곳이라 저렴한 가격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어떤 아랍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너의 옆에 앉아서 같이 먹어도 되겠니? 나는 할머니가 앉을 수 있게 앞자리를 내어주었고 서로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래전 할머니는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가족들과 이곳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이탈리안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디에 사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여행 중이며 숙소가 이 근처라고 답했다. 어떻게 미국에 혼자 여행을 온 건지 신기한 모양새였다. 들어보니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매끄럽지 않은 대화 속에서 우린 서로 존중을 주고받았다. 할머니는 나에게서, 나는 할머니에게서 국적은 달라도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할머니랑 두란두란 이야기하며 식사를 마치고 난 관광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자신이 차가 있으니 태워준다고 했지만 숙소가 정말 코앞이라 한사코 거절했다. 할머니의 눈에 금세 그리움이 맺혔다. 자신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던 시절, 그러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젊은 그 시절을 눈앞에 서있는 동양여자에게서 발견한 듯했다. 난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 시절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Take care, rudia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건네고 내가 숙소로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하시고선 뒤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