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더라도 충분히 좋은 일자리가 보장된다. 넉넉한 휴가일정은 물론이고 지원금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베이비시팅 시장이 활발했는데 프랑스 거주 한인들의 경우에도 수요가 높았다.
나는 한국계 프랑스인 아이들을 주로 돌보았다. 이중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프랑스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나는 베이비시터로 아이를 케어하기도 했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역할도 함께 맡았다. 매주 수요일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많은 프랑스 교포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13구에 위치한 프랑스 건물에 파리한글학교라고 써진 한국어 간판이 생경했지만 깊은 곳에서 애국심이 생기기도 하던 순간이다.
한 번은 유치원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다. 출근하신 어머님을 대신해 간단히 아이에 대한 질문에 답을 했는데 당시 나의 턱없이 부족한 프랑스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럼에도 손짓 발짓 써가며 유치원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더듬더듬 말하는 것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며 이 뜻이 맞는지 한번 더 쉬운 단어로 풀어서 설명해 주던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했다. 선생님의 전문적이며 너그러운 태도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유치원 그 어디에도 CCTV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치원 출입구에는 있었지만 내부에는 그 어떠한 감시카메라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교사의 권리를 위해 CCTV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엄마들은 믿고 아이들을 맡긴다. 본인들이 내는 적지 않은 세금이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훌륭한 교육이 제공될 거란 믿음으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맡기고 일을 한다. 이러한 권리를 위해 국가 또한 엄마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회복지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동시에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