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키스는 언제? 숙제 하나.

by 정자까야

겨울의 엄마는 겨울이에게 뭔가를 말하고픈 듯했다.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겨울 주위를,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멤돌았다.

엄마. 뭐 할 말 있어요? 겨울은 눈치를 채고 물었다.

아니..봄이랑 우연히 연락이 됐는데 우리집 인근에 수제 버거 맛있게 하는 곳이 생겼다는거야. 내가 수제버거 좋아하는거 알잖아. 말 나온김에 다음주에 한 번 가자고 했는데 너 시간 어떤가 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겨울은 웃었다. 봄이는 봄이대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알겠어요. 내주 토요일이죠? 점심 시간 비워둘게요.

엄마는 겨울의 쿨한 반응에 살짝 당황한 듯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는지 딸의 코트에 묻는 먼지를 떼어내며 말했다.

봄이 걔가 겨울이 너한테 관심있어 그런거지. 나한테 환심 살 일이 뭐가 있겠니. 그 정도 스펙에, 그 인물이면 따르는 여자들도 많을텐데 우리 겨울이 좋아한다니 나야 나쁠 거 없잖니? 변호사 양반 잘 못하면 봄이한테도 기회도 주고 그러렴. 남주긴 아까운 사윗감이긴 해..

사람에 대한 엄마의 시선은 현실적인 걸 넘어 속물 근성까지 느껴졌지만 겨울은 대꾸하지 않았다. 야근으로 늦는다는 말을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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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2주 전이었다. 겨울은 그 사이 봄이를 예식장에서 이미 본 터였다. 봄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건 봄이로선 엄마와의 끈이 최고의 카드이고 그걸 잘 활용할 수밖에 없단 걸 겨울이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겨울 자신도 엄마와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는 겨울에게 단 둘이 식사하자는 말을 해본 적이 없고 겨울도 그 장면이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형성되지 않은 모녀간 친밀함을 성숙한 뒤에나 만들려니 타인과의 관계 설정보다도 더 어려웠다.

좀 거칠게 말하면 봄이는 겨울과의 시간을 위해 엄마를 끌어들였고 겨울은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 봄이의 존재에 빚을 졌다. 엄마는 엄마대로 그 시간이 좋았으니 세 명의 점심 식사는 모두에게 이익인 셈이었다.

봄이는 먼저 와 있었다. 엄마와 겨울을 보자 벌떡 일어나 자리로 안내했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타입이라고 겨울은 생각했다.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유능하고, 빈틈이 없으며, 심지어 싹싹하기까지한 야심가 후배를. 물론 미희의 지적 마냥 좋아할 후배를 찾긴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겨울의 엄마는 자리에 앉은 뒤 매장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큰 사업을 성공시킨 사업가의 본능이었겠지만 겨울은 그런 엄마의 눈썰미도 내심 못마땅했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것같이 무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매장 잘 꾸며놨네.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것처럼 장식한 옷가지며 소품들이 빈티지한 느낌을 잘 살렸어. 조명도 빌트인 된 것들과 밖으로 일부러 늘어놓은 것들이 통일적이면서도 약간의 변형이 섞여있어 포인트를 주고..인테리어 신경써서 잘 했네..맛만 좋으면 앞으로 자주 오겠는데?

겨울의 엄마는 매장의 첫 인상이 맘에 든 모양이다.

네 어머님. 여기가 이즘 젊은층에서 나름 핫플입니다. 인스타나 이런데 인증 사진도 많이 올라오고. 어머님 수제 버거 좋아하시는 거 알고 있어서 제가 예전부터 찜해뒀었어요.

봄이는 어머니와 쿵짝이 잘 맞았다. 처음엔 봄이가 부러 맞춘려고 애쓴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봄이의 성향이 원래 엄마랑 잘 맞는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구심마저 들었다. 겨울로서는 자식인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봄이가 대신 해주고 있는듯해 고마우면서도 한편 부담이기도 했다.

어머님 여기 시그니쳐가 치킨버거에요. 가성비도 좋구요. 오늘은 첫날이니 시그니쳐로 먼저 드셔보실래요?

봄이 넌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 겨울은 속으로 문답하며 웃었다. 이런 면은 독보적이고 가을이나 심지어 여름도 절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겨울의 엄마는 막내 아들이 권하는 것은 사양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치킨버거를 주문했고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내내 흐뭇한 표정이었다.

일반 패스트푸드점과 달리 주문한 음식을 직원이 직접 서빙하여 가져다주었다. 모자를 돌려쓰고 아직 추운 날임에도 KOREA라고 적힌 반팔티를 입은 청년들이 분주하게 매장을 돌며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크게 외쳤다. 이 매장이 인기있는건 엄마가 말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젊은 에너지가 원인이지 않았을까 겨울은 생각했다. 힙하다는 건 정체된 사물에서가 아닌 동적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이기에.

겨울의 엄마는 맛있게 먹었다. 몸에 안좋다는 콜라와 감자튀김까지 남기지 않고. 엄마의 식성은 겨울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좋은 건 돈값한다고..몸에 좋은 비싼 거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분이 버거세트에는 체면을 내려놓았다. 프랜차이즈 버거도 좋아했다. 다만 건강을 챙긴다고 수제를 더 찾을 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봄이 부모님은 참 좋겠어. 이렇게 사근사근하고 믿음직한 아들이라니. 난 자식 복도 없지. 딸 둘 있는게 한 명은 집나가 오질 않고 또 한 명은 퉁명스럽기만 하니. 봄이같은 사위라도 하나 있음 좋겠네..

엄마. 그만해요. 엄마가 그런 얘기 하는데 네네할 자식이 있겠어요? 딸이 왜 퉁명스러운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겨울은 쏘아붙였다. 마음으로는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다가 어느 순간 못참고 또 말을 내뱉었다.

어머님. 겨울 선배가 퉁명스러우면 세상에 자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어머님이 잘못하신게 아닐까..

봄이는 웃으며 말했고 겨울의 엄마는 봄이의 어깨를 치며 서운해 하면서도

봄이 네가 그리 말하면 그런 거겠지 라고 두둔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나..겨울은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버거 집을 나와 커피까지 다 먹고 난 다음에나 집으로 돌아갔다. 겨울에게는 봄이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라고 말하고는.

역까지 걸으며 겨울은 말했다.

네가 막내 아들 역할해서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 늘 너의 수고로움에 고맙고 미안해.

선배. 그런 감정 느낄 필요 없어요. 저 비즈니스맨인거 아시죠? 전 투자하고 있는거에요. 선배 말대로 저의 시간과 수고로움을. 훗날 제 가족이 되실 분들을 위해서요.

봄이다운 솔직한 멘트였다.

선배. 말한김에 한가지 더요. 제가 어머님 이용하는 것 같아 혹시 마음이 불편하신가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인간은 항상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지 도구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말 저도 마음에 새기고 삽니다. 말씀드렸듯 어머님은 제 가족이라 생각하는게 가장 우선입니다. 혹 어머님이 선배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력을, 제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사해주신다면 그건 그냥 덤인거죠. 그게 주는 아니란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겨울은 그 둘의 차이에 대해 잘 이해가 안됐지만 되묻진 않았다. 설령 봄이가 자신과의 미래를 위해 엄마의 존재를 이용했다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따지고 보면 기혼자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대방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겠는가. 넓게 보면 봄이의 행동이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봄이는 어르신과의 친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을 뿐.

봄아. 나도 궁금한게 있어. 겨울의 물음에 김봄은 화색이 돌았다.

선배가 저한테 궁금한 것도 있어요? 얼마든지요.

너..마지막 키스는 언제였니? 겨울은 질문해놓고도 멋적었는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난감한 질문이었다. 예능인지 다큐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봄이는 웃으며 답했다.

무슨 의도인진 모르겠지만..뭐 선배가 궁금해하니 솔직하게 답할게요. 아마..한 일년 전쯤? 마지막으로 사귄 사람이 그 즈음이었으니..

그래? 그 뒤로는 왜 연애 안하고? 농담처럼 던졌는데 봄이의 답변은 의외의 궁금증을 일으켰다.

글쎄요. 아마도..아..아마도 제가 선배를 놓칠 것 같은 불안함에..다른 사람에겐 시선 거두고 선배만 바라본 때가 그 즈음이였던 것 같아요. 아마..여름씨 때문이겠죠. 그 양반이 메기 역할을 너무 잘해서..봄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은 훌륭한 메기였구나 생각하면서.

근데 왜요? 갑자기? 봄이의 질문에

아..미희가 세 명에게 다 질문해보라고 하길래..

봄이는 웬 싱거운 대답이냐는 표정이었고 겨울은 뭔가 숙제를 해냈다는 듯한 후련함으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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